지난번 푸아티에 어학 포스팅에서 잠깐 언급했듯이, 혼자서 기숙사를 연장하려고 하다가 바로 광탈당하고 별 수 없이 쉐어하우스의(이하 편하게 꼴로라고 하겠다.) 방을 구했다고 했다. 당시에 보증인도 큰돈도 없는 어학생이 최대한 빨리 방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은 이것뿐이었다. 기숙사를 포기한 후로 곧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야 했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촉박하기도 했다.
보통 꼴로를 구하기 위해 프랑스의 중고나라+당근을 합친 사이트인 Leboncoin(르봉꾸앙)이나 Appartage(아빡따쥬)를 이용한다. 각자 장단점이 확실하다. 봉꾸앙은 매물이 많은 대신에 직접 집주인한테 컨택을 하면서 자기 어필을 해야 한다. 아빡따쥬는 매물이 적은 대신, 자신의 프로필과 자기소개를 올려두면 집주인에게서 먼저 연락이 오기도 한다. 나는 아빡따쥬에 내 프로필과 자기소개, 사진을 등록해두고 집을 찾고 있었는데, 한 집에서 연락이 왔다.
이때다 싶어서 긍정적인 답을 했다. 집주인은 메일로 방 다섯 개 중에 두 개가 비었으며, 빈방의 사진과 월세 등 간단한 정보 등을 보내주었다. 2번 방은 한 달 월세가 315유로, 5번 방은 325유로였다. 10유로도 큰돈이라서 마음속으로 두 번째 방을 선택하기로 마음먹고 집을 보러 가겠다고 했다.
집은 푸아티에 시내 찻집 뒤편에 있었다. 예쁜 찻집 뒤편에 있는 예쁜 화단을 지나 하얀색 철문을 열면 나오는 나무문, 그 뒤에 나선형 나무계단... 설명만 들으면 아주 낭만적이고 동화적인 집처럼 느껴졌다. 집주인 노부부도 너무나 친절하고 좋은 첫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학생들 집 옆에 본인들이 사는 집이 따로 있었는데, 계약할 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 집에 들어갈 수 있었다. 앤티크하고 비싸 보이는 가구가 가득했다. (지금 생각하면 돈 박박 긁어모은 마귀들의 소굴처럼 느껴진다.) 아무튼 차근차근 계약을 마치고, 3달치 보증금을 지불한 뒤에 내 방에 짐을 올려두고 나는 한국으로 두 달간 방학을 보내러 떠났다.
처음 몇 달간은 별일이 없었다. 나는 어학원에 다니느라 바빴고, 별일 없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집을 관리하는 할아버지가 나에게 무례하게 굴기 시작했다. 아침에 급하게 집을 나서느라 철문을 딱 한번 못 닫고 나갈뻔한 적이 있는데, 그걸 그 할아버지가 발견하고는 집에서 나에게 소리를 지르는 게 아닌가. 기분 나빴지만 내가 실수한 건 맞으니까 미안하다고 하고 문을 제대로 닫고 학교에 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뒤로 집에 생기는 크고 작은 문제들이 (무슨 문제들 인지도 난 모른다. 맨날 방에 히키코모리처럼 박혀있었고 뭘 망가뜨리거나 함부로 쓴 적도 없다... 뭐 다섯 명이 쓰는 집이니 이런저런 문제들이 있었겠지.) 아마 나 때문이라고 생각하면서 분노를 쌓아두신 것 같다.
하루는 어학원에서 친해진 친구를 내 방으로 데리고 와서 같이 수다를 떨다가 시간이 늦어졌고, 내 방에서 재웠는데 그 친구는 이 집의 룰도 모르고 열쇠도 없으니 아침 일찍 나를 깨우지 않고 나서면서 철문을 닫지 않았다. 내 생각에는 이것도 보신 것 같다. 이때는 계약서 조항을 자세히 읽지 않아서 몰랐는데, 친구나 가족을 방에 재우려면 적어도 1주일 전에는 미리 집주인에게 통보를 하고, 방문자는 하룻밤에 50유로를 내야 하는 항목이 있었다. 만약 사전 통보 없이 재워주면 150유로를 내야 한다. 내가 이것을 어겨서 잔뜩 벼르고 있었을 거고.
그래서 내가 잘못한 건 철문을 딱 한번 제대로 닫지 못한 것, 그리고 계약서 조항을 미처 인지하지 못하고 친구를 하룻밤 재운 것 정도다. 집주인이 차분히 나에게 말했으면 서로 오해를 풀 기회를 얻었을 거다. 그러나 집주인은 분노를 폭발시킬 기회를 엿보고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내가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 전혀 인지하지 못한 채... 어느 날 어학원에서 친하게 지내는 한국인 언니랑 시내에서 놀다가 비가 왔고, 우리 집에 남는 우산을 빌려주기 위해 그 언니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왔다. 그때 노크 소리가 들려서 문을 열었는데 집주인 할아버지가 서있었다. 나는 그렇게 사람이 무서운 표정으로 무섭게 소리 지를 수 있는지 처음 알았다. 뭐라 뭐라 소리치면서 문도 안 닫고!!! 네 방은 왜 이렇게 더러워? 돼지우리 같아!!! 여긴 내 집이야!!! 뭐 이런 식으로 소리 질렀던 것 같다.
하지만 나도 약 1년간 동안 프랑스에 지내면서 그들의 뻔뻔함과 약간의 불어를 배웠기에 지지 않았다. 아 그리고 사실 나는 겁나면 더 태연하고 뻔뻔하게 행동하면서 내가 겁난 것을 숨기려고 하기 때문에 그게 좀 도움이 된 것 같다.
나는 집주인에게 '문은 당신이 말해서 신경 쓰면서 닫고 있다. 현재 이방은 내가 당신과 계약을 해서 계약이 끝날 때 까지는 내 소유이기 때문에 내가 어떻게 쓰던 당신이 알바 아니다' (C'est pas vos onions/ 쎄빠 보조니옹/ 아니면 C'est pas vos affaires/쎄빠 보자페흐/라고 말하면 니 알바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첫번째 문장은 구어체라 가까운 사람들에게 쓰는 말투) 라고 나도 같이 소리쳤다. 아마 집주인은 내가 그렇게 당당하게 나올줄을 몰랐는지 '진정해, 진정해, 우리 조용히 이야기하자. 여기 다른 학생들도 지내고 있어.' 라고 갑자기 태도를 바꿨다. 아니 먼저 미친놈처럼 소리질러서 겁먹게 한게 누군데??? 아무튼 집주인은 나에게 밀리는 것 같으니까 우물쭈물 하다가 '너 저번에 니 친구 데려와서 재웠지? 나한테 미리 말도 안 하고. 그거 계약 위반인 거 알아? 너 지금 데려온 친구도 몰래 재워주려고 데려온 거 아니야?'라고 또 시비를 걸었다.
나도 지지 않고 '계약서에 뭐가 있는지 난 프랑스어가 익숙하지 않아서 제대로 읽지 못했다. 내가 계약서를 다시 읽어보고 내가 잘못한 부분이 있는지 확인하겠다. 그리고 지금은 밖에 비가 와서 우산을 빌려주려고 데려온 거다.'라고 답했다. 그때 막 우산을 빌려준 터였어서 집주인도 그 언니가 우산에 가방까지 멘 채로, 곧 나갈 사람이었다는 게 뻔히 보였을 것이다.
그 뒤로 뭐라 뭐라고 더 말하다가 내가 화나서 씩씩 거리니까 '일단 늦었으니 우리 다음에 얘기하자'라고 말하면서 사라졌다. 혼자 있었으면 너무 무서웠을 것 같은데 친한 언니가 있어서 용기를 얻어서 그렇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아무튼 언니도 너무 놀라고 무서웠는지 나에게 일단 자기 기숙사 방에 가서 같이 있자고 했다. 사실 그전에 집주인이 사전 통보 없이 내방을 자기 열쇠로 멋대로 열고 들어온 적이 있었기 때문에 나도 괜히 무서워져서 알겠다고 했다. 솔직히 그렇게 싸우고 나니까 이 집이 꼴 보기 싫어져서 조금도 더 있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었다.
그렇게 급하게 필요한 것들만 챙겨서 언니가 있는 기숙사 방에서 3일 정도 지냈다. 그러면서 집주인한테 장문의 편지? 메일?을 써서 보냈다.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편지를 인쇄한 다음 직접 우편함에 넣어두고 온것같기도 하고...)
'어떤 오해를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당신의 집을 최대한 존중하면서 지내고 있으며, 철문을 닫지 못한 것은 내 실수지만 내 기억상으로는 당신이 나에게 소리 질렀던 때 그때 딱 한 번뿐이다. 방이 당신 기준으로는 더러웠을 수도 있지만 난 그때 이야기했듯이 당신과 계약을 했고, 계약 기간 동안 방은 내 소유다. 나는 방을 깨끗이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계약서를 확인해보니 내가 미처 몰랐던 조항이 있었음을 발견했다. 내 실수이니 당신에게 하룻밤 숙박비인 150유로를 낼 것이다.
나는 현재 집주인인 당신이 무서워서 3일째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한밤중에 그렇게 세입자에게 소리를 지르는 것이 정상인가? 내가 실수한 부분이 있다면 차분히 이야기해도 나는 이해할 수 있었다. 게다가 당신은 나에 대해 어떤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다. 내가 그날 너무 무서워서 제대로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당신은 이 집에 있었던 어떤 문제들도 내 탓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맞나? 그렇다면 내가 한 짓이라는 증거를 가져와라. 이미 말했다시피 나는 당신의 집을 깨끗이, 조심히 사용하고 있다. 다른 세입자들에게도 나에게 했던 것처럼 화낸 적이 있는가? 다른 세입자들에게도 당신의 문제에 대해서 이렇게 폭력적으로 말한 적이 있는가?
게다가 당신은 지난번에 세입자인 나에게 사전 통보 없이 방의 문을 열고 들어온 적이 있었다. 나는 그때 내 방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고, 굉장히 놀라고 무서웠다. 한국에서는 아무리 당신이 집주인이라도 세입자에게 방문을 사전에 통보하고 방문한다. 프랑스에는 그런 법이 없나? 나는 당신 때문에 방에 있는 것이 불편하고 무서워졌다.'
뭐 대충 이런 식으로 썼다. 프랑스인들 특성이 절대로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는 것인데, 나도 절대로 미안하다고 하고 싶지 않았다. 나도 개빡쳤다고. 그냥 요약해서 말하면 '아 내가 잘못한 건 맞는데 처음부터 좋게 말했으면 됐잖아. 다른 문제들은 난 듣도 보도 못했는데, 너 나한테 다 뒤집어 씌우는 거지? 내가 외국인이라서 만만하냐? 네가 잘못한 건 없는 줄 알아? 내가 잘 모르지만 너 법을 어긴 건 알고 있지?' 이렇게 쓴 거다. 아무튼 그렇게 내 의견을 적어 보내고 4일째 되는 날 집으로 돌아갔다.
집주인 부부는 내가 돌아온걸 귀신같이 알아채고 나타나서 이야기를 하자고 했다. 내가 보낸 글을 보고 찔렸는지 뭔지 태도가 180도 바뀌어있었다. 또 무섭게 굴까 봐 아주 긴장한 상태였는데 맥이 빠졌다. 자기네 집 부엌에 날 앉혀놓고 계속 내가 잘못한 것에 대해서만 돌려 돌려 돌림판처럼 말하는데, 한참 똑같은 말하는 걸 듣다가 내가 지겨워져서 '응 나도 계약서 읽었어. 내가 보낸 글에 써있었잖아. 그래서 너네 계좌로 150유로 보냈는데?' 하고 하니까 '앗 그래? 그럼 됐어^^'라고 하면서 거짓말처럼 상황이 끝났다. 그래... 나에게 계속 똑같은 말을 했던 이유는 혹시라도 돈을 못 받을까 봐서, 그런데 돈 얘기를 대놓고 하면 민망하니까.. 였었다. 그 뒤부터는 그냥 상종을 안 하려고 했다. 집도 지긋지긋해져서 반드시 기숙사로 돌아가겠노라고 마음먹고 유학원에 다시 연락해서 다음 학기 기숙사 방을 알아봐 달라고 했다.
글이 길어져서 다음 포스팅으로 넘기겠지만, 당시에 내 옆방에 살았던 한 여학생과도 트러블이 있어서 거의 정신병 걸리기 직전이었다. 학기도 일찍 끝났기 때문에 계약 기간보다 한 달 먼저 방을 빼기로 했다. 한국을 돌아가는 비행기도 이미 구입해둔 터였다. (거의 한국으로 탈출하는 기분이었다.)
프랑스에서는 계약기간보다 미리 집을 빼려면 집주인에게 한 달 먼저 편지로 통보해야 한다. (통보용 양식은 구글에 검색하면 나온다. 뭔뭔 법에 따라~~ 이런 문구가 적혀있는 글이다) 집주인하고 맨날 얼굴 보고 사는 사람이라도 예외는 없다. 무조건 편지다. 나는 분명히 한 달 전에 편지를 보냈는데, 집을 뺀다고 면대면으로 말하는 날에 또 나를 그 집 부엌에 앉혀놓고 '네가 한 달 전에 보낸 건 맞지만 우리는 날짜 상 한 달이 채 안 되는 날에 편지를 받았는걸~? 이건 어쩔 수 없어, 남은 한 달치 공과금도 네가 부담해야 해~'라고 말했다. 다 지겨워져서 그냥 알겠다고 했다. 돈만 준다고 하면 참 상황이 빠르게 끝나더라^^ 집주인 부부... 내가 아직도 저주하고 있어... 그 나선형 계단에서 자빠지길... 기대하고 있다고....
여담이지만 이 시기에 나처럼 기숙사를 광탈당하고 다른 곳에서 꼴로를 구한 또 다른 한국인 언니도 정말 막장인 집에서 지내게 된다... 우리 둘 다 꼴로에 몸서리를 치면서 다음 학기에 기숙사로 돌아왔다.
2022.01.25 - [프랑스 유학생의 삶] - 프랑스에서 6개월동안 Colocation(꼴로까씨옹.쉐어하우스)하고 탈주한 후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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