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친구 부모님이 그르노블에 사시는데
이번에 초대해 주셔서 일주일 동안 머무르게 됐다.
남자친구랑 만난지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는데
의도치 않게 형제자매 부모님, 친한 가족들까지 차례로
다 만나는 중ㅋㅋㅋ 게다가 한 명, 두 명씩 따로따로 만났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형의 생일이랑 이런저런 일이 겹쳐 온 가족이 다 모이는 자리에
나도 끼게 된 것... 물론 신경쓰이긴 했는데
남자친구 가족들을 보는것에 대한 스트레스보다는
'사회성과 눈치가 상당히 없는 나... 게다가 프랑스어.. 그다지....
갑분싸 어색 타임 안 만들고 일주일간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였기 때문^^호호
아무튼 금요일에 진짜 꼭두새벽부터 일어나서 새벽 6시 40분에 출발하는
기차를 타고 그르노블로 슝슝 출발했다.
메츠에서 리옹으로, 다시 리옹에서 그르노블로 한 번 갈아탔다.
거의 6시간 정도 여정이라 힘들긴 했는데,
아침에 일찍 일어나느라 피곤해서 그런가? 자느라 시간이 잘 가긴 했다.
기차역에서 내렸더니 남자친구의 아빠가 미리 오셔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부모님 댁이 그르노블 시내에서 살짝 바깥에 있는
다른 동네에 있어서 함께 차를 타고 이동했다.
집은 2층 주택으로 집 앞마당에 무려 무화과나무와 사과나무가 있어서
두 과일 무한 섭취가 가능했다. 정말 행복~
사과나무는 심은 지 3년째 되는 해라
올해가 첫 수확이라고 하셨다.
덕분에 매일매일 사과파이 먹음 후후
짐을 풀고 낮잠 타임을 가진 후에
같이 차를 타고 멀리 떨어진 호수에 갔다.
그르노블은 도시에서도 사방에 큰 산들이 가깝게 보여서
마치 한국에 온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이렇다 보니 그르노블에서는 여름에 호수에서 매일 수영을 하면서
더위를 식힌다고 한다.
중학교 때 수영을 열심히 배운 게 무색하게도
수영을 다 까먹어서 남친 아빠랑 누나가 나 수영 알려줌ㅠ
근데 몸이 수영하는 동작이나 이런 건 기억하는데
너무 체력도 후지고 삐그덕거려서 구현을 못함ㅠㅠㅠ
쓰레기 같은 몸...
날이 워낙 덥다 보니 물도 미지근했지만
오히려 난 그게 좋았고 아무튼 즐겁게 수영을 했다.
다음날인 토요일에는 남친이랑 남친 누나랑
그르노블에 사는 남친 친구(남친이랑 이름 똑같음ㅋㅋ)를 만나서
다 같이 방탈출 게임을 하러 갔다.
한국에서는 진짜 옛날 고릿적에 공포테마 방탈출 게임 딱 한번,
그리고 메츠에서 남친+남친 룸메랑 같이 공포테마 방탈출이랑
감옥테마 방탈출 이렇게 총 딱 세 번 해본 게 전부이다.
그래서 경험이 적기에 비교를 해도 되나 싶긴 하지만,
진짜 여태껏 해본 방탈출 게임이랑은 달랐다!
엄청 다이나믹했다고 해야 하나...
보통 하나의 테마를 가지고 쭉 진행되는 다른 방탈출 게임과는 다르게
여기는 중간에 반전도 있고 방과 방 이동도 꽤 체력을 요구할 정도로
다이나믹했다.. 마지막 탈출도 엄청나게 스펙터클ㅋㅋㅋㅋ
힌트를 주는 방식도 특이했다.
정말 혹시라도 그르노블까지 가서 방탈출 게임 해볼 사람이 있을까
싶어서 스포 하기는 조심스러운데, 만약에 해보고 싶다면
여기 강추한다! 물론 프랑스어 잘해야 함..!
***스포***
처음에는 타투샵에 방문한 고객의 입장으로 게임을 시작한다.
게임 마스터가 능청스럽게 타투 아티스트로 연기를 정말 잘한다!
우리 중 한 명을 골라서 의자에 앉힌 후에 판박이로 팔 안쪽에 이미지를 찍고
시술을 시작하려는데, 마침 기계가 고장 나서 타투 아티스트가
'금방 돌아올 테니 아무것도 건드리지 마!'
하고 나가는 순간 게임이 시작된다.
여기까지만 해도 음 타투샵에서 탈출하는 게 기본 테마인가? 싶은데
뜬금없이 방 한쪽에 있는 어항에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목소리가 말하길 (프어 딸려서 대충 이해함)
타투 아티스트는 나쁜 놈이고 자기는 여기에 갇힌 불쌍한 영혼이라고,
너희들도 당하기 전에 빨리 도망가!라고 말한다.
보통은 퍼즐등을 진행하다가 막히면 무전기나 방 위쪽에 있는 카메라를 보고
게임마스터를 불러서 도움을 청하는데
여기선 일정 시간이 지나면 이 불쌍한 목소리가 우리에게 힌트를 준다.
중간에 퍼즐을 풀다가 좀 더디다 싶으면 벽에 있는 구멍에서 팔이 쑥 나와서
손으로 신호를 보내거나 팔에다가 타투그림을 도장처럼 찍어서
힌트를 준다ㅋㅋㅋㅋㅋㅋㅋ
아무튼 방 안에서 퍼즐을 진행하다 보면 벽 쪽에 있는 숨긴 문을 열 수 있는데
거기가 무려 볼풀장이다! 볼풀장안에서 힌트를 찾아야 하는데
그 안에 (물론 모형이지만) 뼈들이 나와서 무서웠음ㄷㄷ
그리고 볼풀장에 일단 들어가면 원래 방으로 못 나오게 문이 잠기는데
타투 아티스트가 막 두드리면서 나오라고 함 (그것도 개 무서움ㅠㅠㅠ)
암튼 어찌어찌 다른 쪽에 달린 문을 여는 자물쇠 번호를 찾아서 겨우 기어 나오니
여기서 반전! 사실 타투 아티스트는 아무 잘못이 없었고
자기가 피해자라고 하던 불쌍한 영혼은 우리를 유혹하는 인어였다!!!
한쪽 바닥에 스크린이 있고 거기서 무섭게 생긴 인어가 천천히
기어 오는데 ㄹㅇ쫄렸다... 게다가 제한시간이 있어서 그 안에 힌트를 풀지 못하면
배드 엔딩... 그래도 열심히 합심해서 힌트로 각양각색 퍼즐을 풀고
천장에 있는 밧줄 사다리를 내려서 그걸 타고 위쪽으로 올라가서
미끄럼틀ㅋㅋㅋㅋㅋ을 타고 탈출 성공!!!
이 날 저녁에 내가 요리하기로 한 날이라 떡볶이 두 종류를 만들었다.
그냥 매운 일반 떡볶이랑 약하게 간한 궁중 떡볶이.
원래는 일반 떡볶이만 하려고 했는데
남친 형 가족이 아기를 데리고 온다고 해서
아기랑 매운거 안 좋아하는 사람들도 먹을 수 있게
두 종류를 만들었다.
어묵이나 떡 등 좀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재료가 들어가는 터라
걱정이 앞섰는데, 썰고 남은 어묵을
부모님이 부엌에서 맛있다고 다 집어먹으심ㅋㅋㅋㅋ
그걸 보고 마음이 한결 편해졌고 다행히 모두 맛있게 먹었다.
특히 아기가 내가 한 궁중 떡볶이 맛있다고 잘 먹어서
넘나리 뿌듯^^
일요일에는 아침에 남자친구 엄마랑 같이 그르노블 미술관에 갔다.
솔직히 아직 부모님은 어색해서 단둘이??? 미술관???
남친놈아 제발 나랑 같이 가줘;;;라는 생각에
몇 번이나 같이 가면 안 되냐고 물었지만
미술관, 특히 현대미술을 잘 이해 못 하고 좋아하지도 않는
이 T 녀석이 한사코 싫다고 하는 바람에 단둘이서 감...^^
물론 너무 잘해주셔서 괜찮긴 했는데 그래도 어색한 건 어쩔 수 없다고 이 녀석아
남친 엄마가 같이 가면서 몇 번이나 지금 가고 있는 미술관은
별로 크지 않다, 생각보다 작다, 이렇게 강조를 하셨는데
그냥 함정이었던 걸로... 와 진짜 대박 크고
진짜 옛날 그림부터 현대미술까지 시대별로 쫙 나눠져 있어서
아무리 빨리 봐도 최소 3시간 걸리는 곳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 작품도 많이 보였는데,
현대 미술은 솔직히 미술을 공부하는 입장으로써도 에바스러운
작품들도 있었다.
미술도 다른 학문처럼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이 자연스러우니
조금 난해하거나 억지스럽거나 어려운 부분이 있어도
최대한 이해하려고 하는 편이다.
하지만 중간에 흰 판때기가 걸려있었는데 진짜 그건...
아무리 개념 미술이라고 해도,
현대 미술이 작가의 생각이 중요하다고 해도 진짜 그건
에바 그 자체였음.
차라리 하얀색 판의 재료가 되는 게 좀 특이하거나
엄청 크거나 뭐 그러면
'오 자르는데 고생했겠는데?' 이런 생각이라도 들지...
관람을 마치고 기념품 샵에서 시집을 사주셨다.
다시 집에 돌아와서 점심밥을 먹고, 오후에는 저번에 갔던 곳과
달리 더 멀리 있는 호수로 갔다.
떠나기 전에 어쩌다 보니 아기한테 그림책을 읽어줬는데
그때부터 내가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는지ㅋㅋㅋ
말도 걸고 호수에 도착해서는 굳이 내가 있는 쪽으로 내리고 싶다고 했다.
여기가 더 위쪽이라서 그런가?
사람들도 더 많고 물도 더 차갑고 깨끗했다.
미리 와있었던 남친 부모님이 싸 온 먹거리들을 왁왁 먹고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수영도 했다.
아기가 보트 타고 남자 친구(장난기 많은 삼촌느낌임)가
해적이라고 쫓아가니깐 엄청 재미있어했음ㅋㅋㅋㅋ
중간에는 '내가 보트 탔으니깐 나도 해적이야!' 해서
졸지에 같이 해적이 됨ㅋㅋㅋㅋㅋ
그렇게 한참 수영을 하고 기운이 쭉 빠져서 푹 쉬었다.
월요일에도 호수를 갔다..ㅋㅋㅋ
진짜 한국에서는 여름 나려고 계곡 가듯이,
정말 맨날 맨날 호수를 갔다ㅋㅋㅋㅋㅋㅋ
화요일에도 호수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이 날 남친 형의 생일이라서 다 같이 성대한 저녁을 먹었다.
좀 특별한 한 상을 차리려고 한 모양인지, 평소에 자주 간다고 했던
레바논 음식점에 특별히 부탁해서 음식을 주문했다고 한다.
음식들이 다 특이했는데 그래도 맛있었다.
사진에 있는 난 같은 얇은 빵에다가 여러 소스를 찍어먹었는데
특히 왼쪽에 올리브 유가 뿌려진 저 하얀 소스가 맛있었다.
이날 저녁에 놀러 온 친지가족 중에 어린 여자아이가 있었는데
내 옆에서 저 소스에다가 쌀밥을 어찌나 야무지게 비벼먹던지ㅋㅋㅋ
사진 속에 음식 말고도 육회 같은 음식이랑 만두같이 생긴 사이드랑
미트볼 같이 생긴 작은 고기빵들도 소스에 찍어서 먹었다.
꽤 맛있고 재미난 경험이었다.
마지막에 생일축하 케이크를 부모님이랑 아기가 들고 들어왔는데,
정말 감동인 게 내 케이크랑 생일도 준비해 주셨다...
이 날 기준으로 이틀 뒤가 내 생일이었는데
솔직히 남에 가족 집에 놀러 가서 괜히 생일 티 내는 것도 웃기고
남 생일 축하하는데 숟가락 얹는 게 아닐까 민폐 같아서
이번 생일은 조용히 지나가겠구나~ 싶었는데
이렇게 같이 축하해 주다니ㅠㅠㅠㅠㅠ
흑흑 이날 기분 좋아서 와인도 주는 대로 다 마시고
케이크도 많이 먹었다
엄마도 남자친구 부모님이 날 잘 챙겨주시는 것 같아
안심하신듯하다.
(사실 2월에 프랑스 왔을 때 남친 한번 보긴 했음)
다음날인 수요일은 호수를 따라가지 않았다.
모처럼 새로운 도시인 그르노블에 왔는데
현지인들하고 지내다 보니 오히려 시내구경을 전혀 못하고 있어서ㅋㅋㅋ
마침 남친이 드디어 머리자를 결심을 한 건지 미용실에 가겠다고 해서
머리도 자를 겸 마실을 나갔다.
그르노블은 이 시기에 35-38도를 왔다 갔다 할 정도로 더운데
메츠가 이번 여름에 정말 요상할 정도로 천둥번개 비바람에
햇빛 못 보는 칙칙한 여름이라 좀 좋았다.
다행히 예약 없어도 받아주는 미용실을 두 번만에 찾아서
덥수룩 머리털이 드디어 키위가 됐다ㅋㅋ
이후에는 동네 구경을 좀 하고
케밥이랑 맥주를 마셨다. 수제 감자튀김이 진짜 존맛이었음!
술 안 마시는 남친은 콜라 마심.
살짝 알딸딸하게 이 날을 마무리했다.
목요일에도 온 가족이 호수에 간다는데
나랑 남친은 체력이 방전이 되어서 가지 않았다^^
대신 이 날 내가 요리하는 날이라 전날에 다 같이 사둔
재료로 닭갈비랑 찜닭을 만들었다.
처음 만들어봤는데 온 가족이 맛있게 먹어서 정말 뿌듯했다람쥐~
다시 금요일이 돌아왔고 기차를 타기 전에
남친, 남친 아빠, 남친 형, 아기랑 같이 자연사 박물관에 방문했다.
마치 동물의 숲에 부엉이 박물관을 연상시키는 장소였다.
자연사 박물관 오덕답게 이런 나무 장식장과 박제들에 가슴이 두근두근
각 도시에 보통 무조건 자연사 박물관이 하나쯤은 있다.
이곳은 꽤 규모가 크고 전시품들도 다양했다.
동물 박제, 곤충 박제, 화석들 그리고 돌들까지...!!!
사실 돌들은 파리 돌 박물관에서 질릴 만큼 보고 왔지만
돌.. 반짝이... 늘 새로워... 짜릿해....!
너무 늦게 가는 바람에 폐장시간을 맞추느라 한 시간도 못 봐서
슬펐지만 그래도 박물관 구경은 즐거웠다.
다음에 다시 오게 된다면 꼭 3시간 있어야지.
곤충 표본들을 보니 나도 만들어보고 싶어졌다.
이후로 짐을 열심히 챙겨서 다시 메츠로 돌아왔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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