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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유학생의 삶/주

~룸쉐어가 스릴러영화가 되어버린 건에 대하여~

by 거품벌레뽀글뽀글 2024. 6.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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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다시 이사했다. 메츠에 4년 살았는데 첫 이사 빼고 세번째 이사다.

그러나 이사는 필요했고, 벌어진 일을 돌이켜보면 정말 좋은 타이밍이었다.

 

때는 졸전으로 말라죽어가고 있던 5월 말... 전 포스팅을 보면 알겠지만

이미 흡연에 미친 룸메이트들이 지긋지긋해서 남친집에 거의 눌러앉아 살고 있었고

졸업 직후에 바로 이사하려고 부동산에 이미 방빼는 날짜까지 정해서 통보해둔 상태였다.

 

졸전에 필요한 작업들을 좀 찾으로 정말 오랜만에 집을 방문했는데,

이 때부터 마치 라잌 스릴러영화 시작같은 초반 복선이 시작됨.

 

아파트에 거의 다 왔을 때, 앞서서 걷던 부자도 그 곳에 사는 모양인지 나보다 먼저

아파트 대문을 열고 들어갔다. 너무 귀엽게도 남자아이가 내가 저 멀리서 걸어오는 걸 보고

문을 잡아줬고, 나는 '고맙다^^ 정말 친절하구나~^^'하고 후다닥 뛰어갔다.

 

엘리베이터를 같이 탔고, 엘리베이터 문이 스르륵 닫히려는 찰나

대문으로 까만 모자를 푹 눌러쓴 남자가 들어왔다.

그런데 엘베는 안타고 엘베 옆에 있는 계단 쪽으로 슥 올라가버렸다.

 

난 남이라 그냥 흐린눈하고 제대로 보지 않았는데,

옆에 있던 남자아이가 자기 아빠에게

'Papa il est bizarre!' (아빠 저 사람 이상해요!)

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흠. 그렇게 이상한 사람이었나...? 하고 2층에 내려서

집 문을 열고 닫으려는 찰나에, 계단에서 그 이상한 남자가

동시에 문을 열었고 나는 황급히 문을 닫고 잠궜다.

 

그런데 그 남자가 아파트 키로 문을 열고 들어왔다!?

알고 보니 그 이상한 남자가 바로 내 옆방 룸메던 호주아재놈이었던 것.

그런데 몇 달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얼굴도 엄청나게 수척해져 있고,

인상이 진짜 미안하지만 살인마같았다...;;; 모자도 눌러쓰고

입은 모든것들이 다 검정색이었고...

 

그냥 저런 모습을 보니까 오히려 아무렇지 않게

활짝 웃으면서 인사하게 됐다.

그렇게 어색한 인사를 주고 받고 방에 들어갔고,

방을 약간 정리하면서 필요한 것들을 찾았다.

그러던 중에 화장실이 가고 싶어졌고,

무심코 화장실 문을 열었는데...

 

화장실 구석에 휴지가 정말 산더미처럼 쌓여있었고,

악취가 진동을 했다. 진짜 구역질이 날 뻔했다.

근데 소변 대변의 냄새라기보다는 뭔가 상한? 썩은? 냄새였다.

 

너무 느낌이 이상해서 일단 늘 하듯이 방 창문 다 열어놓고,

내 방문을 잠그고 황급히 아파트 밖으로 빠져나왔다.

 

문제는 내가 방을 뺀다고 통보했기 때문에 부동산에서 그 다음 주부터

세입 희망자들이 집을 보러 온다고 했던 것...

화장실은 공용공간이긴 하지만, 내가 어느정도 책임을 물어야 하는 부분일 수도

있었다. 계약상 공용공간에 심각한 문제가 생기면 세입자들이 각자 N빵해서

물어줘야한다. 

 

일단 진위여부를 좀 확인하려고 세번째 룸메인 인도남 라지한테 오랜만에 연락을 했다.

다짜고짜 물어보기는 좀 그래서 'ㅎㅇ오랜만이네 잘 지내심?' 이러고 보냈더니

거의 바로 답장이 왔다. 대충 안부 묻고 본론으로 넘기려고 했는데

뜻밖에도 라지가 먼저 화장실에 대해서 말을 꺼냈다.

 

(대화는 라지가 불어를 잘 못해서 영어로 함)

라지 : 안그래도 너한테 할말 있었는데, 너 화장실 봄?

나 : ㅇㅇㅇ안 그래도 그것때문에 너한테 연락한거임. 냄새 대박이던데 ㄹㅇ뭐임???

라지 : 하... 그거 호주 아재가 한 거임. 걔 화장실 구석에다 커다란 뼈 같은 거 버려놓고,

         내가 치우라고 했는데도 며칠째 휴지로 덮어놓기만 하고 방치중이라서 그렇게 된 거야.

 

 

이 순간이 진짜 벙찔 수 밖에 없었다. 커다란 뼈...??? 그게 뭔 소리야....?

 

나 : 뼈??? 뼈라고??? 무슨 뼈???

라지 : 몰라 암튼 나도 그것 때문에 화장실도 못 써서 며칠 째 친구집에서 지내고 있어.

나 : 음 문제는 내가 곧 이사를 가기로 해서 다음주부터 세입자 방문이 있을 거라는 거야...

라지 : 너 이사가? 나도 이사가려구. 쟤랑 더 이상 못 살겠어. 부동산에도 항의할거야.

나 : 나도 항의하려고. 근데 항의메일을 보내려면 증거가 필요한데, 내가 너무 놀라서

      사진을 못 찍었거든. 냄새가 역겨운건 알아서, 미안하지만 혹시 사진 좀 찍어서 보내줄 수 있을까?

라지 : ㅇㅇ노 프라블럼 나 좀 이따 집 들어갈 예정이라, 저녁에 찍어서 보내줄게.

          항의메일 나한테 보내줄 수 있어?

나 : (?그걸 왜 보내달라는거지) ㅇㅋㅇㅋ 고마워

 

 

 

 

연쇄살인마같은 모습... 화장실 구석에 방치된 커다란 뼈... 썩은내....

도저히 이유조차 추측할 수 없는 이 비정상적인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내뇌 망상공장이 가동을 시작했다.

 

게다가 곧 연락을 준다던 라지놈도 계속 연락이 안돼서

'ㅠㅠ 라지놈 화장실 문 열어보다가 뒤에서 호주사이코한테 가격당한거 아니냐?ㅠ'

라는 두려움이 치솟기 시작했다.

 

하지만 난 몰랐다... 진짜로 무서운건 실체없는 망상 속 사이코가 아니라

현실에 존재하는 회피형의 무책임인간이라는 것을...

 

라지 이 개놈은 저녁에는 '저녁 먹고 찍어줄게^^'

'자기 전에 찍어서 보내줄게^^' 다음 날에는 '나 지금 밖이라서 좀 이따 들어가서 찍어줄게^^'

라면서 계속 핑계를 대며 미루고 있었다. 지 메일주소로 내 항의 메일 달라는 것도

그냥 내가 메일 보내면 숟가락 얹으려고 하는게 분명해졌다.

 

안그래도 졸전에 이사준비에 이딴 비상식적인 일이 겹치니 나는 극도로

스트레스를 받았고, 결국 개빡친 상태로 조바심 내면서 기다리는 것에 지쳐서

그냥 직접 가서 사진을 찍어오기로 마음 먹었다.

 

물론 무서우니까 남친한테 같이 가달라고 함. 이 때가 토요일 저녁이었다.

호달달하면서 아파트에 들어가서 사진만 찰칵 찍고 바로 튀었다.

전보다 휴지가 좀 적어지긴 했지만 심각한 상태는 변함이 없었다.

착각인지는 몰라도 휴지 틈 사이로 빨간... 뭔가가 보인 것 같기도...

 

아파트를 나와서 일단 라지놈한테 신랄하게 문자를 보냈다.

- 내가 보니까 니는 사진 찍어서 보내줄 의지도 없는 것 같고, 결국 내가 사진찍고 내가 메일 보내고

다 내가 하기 바라는 것 같다. 이 무책임한 사람아. 그냥 내가 직접 사진 찍었음.

 

그리고 부동산에 메일도 보냈다.

- 님들 담주에 세입자 방문 있는 거 아는데, 내가 아파트 가보니까 지금 누굴 보여줄 상태가 아님.

일단 라지놈이랑 호주놈이 아파트 겁나 더럽게 쓰고 있고 (사진도 찍어옴. 구석구석마다 쏟아진 쓰레기랑

담뱃재 진짜 심했다.) 심지어 화장실은 라지 놈이 말하길 무슨 이상한 뼈를 호주놈이 버리는 바람에 

악취가 심각하다. 나는 이 아파트가 실내흡연 금지임에도 불구하고 룸메들 모두 담배를 펴대서

거의 이곳에 입주 하자마자 다른 곳에 가서 살고 있다. 

특히 호주놈은 개인 컵을 재떨이로 써서 물건도 망가뜨리고, 제대로 닦지 않아서 담뱃재가 들어간 물을 마시게 함.

룸메가 타인을 존중하지 않고 언익셉터블함 블라블라

 

...등등 여기다가 여태껏 찍어놨던 모든 사진을 첨부함.

 

진짜 메일 보내니까 속이 다 시원했다.

 

그 다음주 월요일부터 졸전 설치를 시작해야해서 본격적으로 바빠지는 찰나였는데,

오전 점심시간이 다 되어가도록 부동산에 답신이 없었다.

그래. 프랑스가 그렇지 뭐. 이럴 땐 뭐다? 직접 쳐들어가기~

 

부동산 사무실에 직접 가서 '나 어디어디 살고 곧 이사가는 사람인데

주말에 메일 보낸거 받아봄? 이거 좀 심각한 일이라서 빨리 너네들이 대응해야됨'

이라고 했다. 카운터에 계신 분이 메일을 확인하더니 심각한 일이라고 판단했는지

(그 와중에 저분도 뼈??? 뼈를 버렸다고??? 하고 다시 물어봄ㅋㅋㅋ)

안쪽에 가서 담당자를 데려왔다.

 

담당자도 내가 직접 와서 더 설명하니 상황의 심각성을 파악했는지

오후에 직접 방문해서 체크해 보겠다고 했고, 상황에 따라 경고메일을 보낼건데

절차상 나도 메일을 받게 되겠지만 내 책임은 전혀 없을테니 안심하라고 했다. 후후.

당연하지만 라지 이야기는 단 하나도 하지 않음. 니도 담배 쳐피면서 나 엿먹였으니

너도 호주놈하고 연대책임을 하렴. 게다가 초반에는 니들끼리 편먹었엇잖아.

 

뭐 그렇게 빨리 대응하겠다더니, 당장 다음날에 있다던 세입자 방문은 취소 못하겠다더니,

대체 어떻게 일처리를 한건지는 모르겠지만 거의 일주일 넘게 깜깜 무소식이더니

내 졸전이 끝나고 나서야 경고메일을 받을 수 있었다.

 

메일 내용인 즉슨, 아파트 위생 상태가 매우 심각하게 더러우며,

실내흡연 금지임에도 불구하고 담배냄새가 심하다. 언제까지 안치우면

전문 청소업체를 부를거고 이건 계약상 니들한테 청구하게 될거다.

라는 내용이었다.

 

그 후에 이사 준비를 하러 집에 가보니 집이 아주 깨끗하게 치워져 있었다.

그래도 화장실은 쓰기 싫어서 짐 옮기러 왔다 갔다 하면서 남친 집에서 해결함...

 

어휴... 아무튼 부동산하고 에따데리우도 잘 마쳤다.

애초에 생활감 자체가 많이 없는 방이라, 보증금 전부 돌려주길 바라고 있다.

(보통 보증금은 바로 돌려주는 게 아니라 빠르면 한 달, 느리면 두 달 후에 돌려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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