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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바이트 경험담

몸보다 감정이 힘들었던 백화점 옷매장 아르바이트

by 거품벌레뽀글뽀글 2022. 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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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도 딱 한번 해봤던 단기 아르바이트다. 이 알바 역시 알바 어플에서 구했다. 이제 막 백화점에 입점한 의류점이라 담당하시는 분이 자리 잡을 동안만이라도 알바를 쓰려고 구하셨다고 했다. 옷 한 벌에 기본으로 10만 원이 넘는 고가의 브랜드라서 혹시라도 옷들을 더럽히거나 손상시킬까 봐 엄청 조심하면서 일을 했다. 이때 처음으로 백화점용 카드리더기랑 관리시스템을 배웠다. 맨날 엄마랑 백화점 가서 직원들이 그런 기계 쓰는 것만 보다가 내가 직접 다루니까 엄청 신기했다! 적립이나 할인도 카드마다 엄청 많고 다양했고, 재고와 판매 관리하는 시스템도 처음에는 다루기 어려워서 첫날 설명해주실 때 메모지에 일일이 다 적었다.

하는 일은 생각보다는 복잡하지 않다. 아침에 와서 매장에 조명을 다 키고 대충 바닥을 쓸고 장식장 같은 곳들을 닦는다. 그리고 옷 진열대도 정렬한다. 시스템도 열고 포스 기도 킨다. 그러고 손님이 오면 적당히 눈치를 보다가 말을 건다. 행사 아르바이트는 무조건 바로 손님들을 도와야 하고, 또 손님들이 그걸 필요로 해서 거부감이 없지만 의류매장 같은 경우는 바로 다가가면 부담스러워하시는 것 같았다. 또 혼자서 마음 편하게 옷을 구경하는 걸 선호하시는 분들이 많았다. (사실 나만해도 옷가게에서 말 거는 게 부담스러우니 이해가 간다.) 그래서 손님이 와도 적당히 눈치를 보다가 직원이 필요할 것 같은 타이밍에 잘 끼어드는 게 중요했다. 그렇게 손님이 보는 스타일을 찾아드리거나, 다른 색, 다른 사이즈가 있는지 확인해준다. 옷을 시착하고 나오면 적당히 장단을 잘 맞춰서 칭찬 해드 리거나 조언해드리는 것도 내 일이었다. 처음에는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는 게 어색해서 좀 뚝딱거렸는데... 나중에 가서는 마음에 없는 칭찬도 마구마구 할 수 있었다. 만약에 찾는 옷 사이즈가 매장에 없으면 시스템으로 확인을 하고, 있다면 재고를 보관해두는 창고로 찾으러 간다. 사실 내가 백화점 손님일 때는 직원이 맞는 사이즈를 찾으러 가서 한참 동안 감감무소식인 게 왜 그렇게 오래 걸리는지 궁금했는데, 이해가 갔다...

창고가.. 정말로 옷 수용소같이 생겼다. 양쪽으로 해당 층의 모든 브랜드 의류가 걸려있고 가운데 길도 엄청나게 좁은데, 도난을 피하기 위해 모든 옷은 다 잠금쇠가 달린 철창에 갇혀있다. 게다가 아무리 원피스/셔츠/바지 이런 식으로 잘 분리해놨다고 해도, 옷이 너무 많아서 찾는데 시간이 꽤 걸렸다. 그리고 창고는 손님들이 절대 절대 찾을 수 없는 곳에 숨어있다. 화장실이랑 엘리베이터 옆에 있는 거 아니야?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다) 랜덤 한 옷 매장의 거울 뒤에 숨어있었다. 물론 백화점마다 다 다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일했던 백화점은 그렇게 창고를 숨겨놨었다. 아무튼 그렇게 이상한 나라의 옷장 같은 곳, 또는 옷 감옥.. 같은 창고에서 옷을 찾아내면 된다. 그리고 옷을 잘 포장해서 계산을 도와드리면 된다. 카드계산을 하고, 주차를 했다고 하면 주차증도 챙겨드려야 한다. 만약에 재고가 없는 상품을 찾으신다면 주문을 도와드리면 된다. 시스템으로 주문을 넣으면 된다. 또 바짓단 길이나 소매 길이를 조절하고 싶어 하신다면 수선증을 써드리고, 이 백화점 의류를 전문으로 수선해주시는 분께 연락을 드리면 옷을 가지러 오신다.

상품권이나 현금 계산이면 같은 층에 그 계산만 따로 해주는 분이 계셔서 그쪽으로 가야 한다. 이 일들을 계속 반복하면 된다! 모든 직장과 알바 장소가 그렇듯 시간이 너무나 천천히 가기 때문에 시간을 때우려고 매장 청소도 열심히 했다.

 

단기 알바를 다양하게 하면서 내가 손님의 입장에서만 알고 보던 장소를 직원의 눈으로 몰랐던 부분까지 아는 일은 항상 흥미롭다. 창고를 포함해서, 특히 옷을 스팀으로 펴는게 제일 재미있었다! 나는 연기 같은걸 너무 좋아해서 극장에서 쓰는 연기 만드는 기계를 사려고 알아본 적도 있는데 (하지만 엄청 비싸서 포기했다...) 그런 연기가 뿜 뿜 나는 스팀기를 다루는 일은 정말 재미있었다. 물론 옷이 젖지 않게 잘 스팀기로 펴주는 건 어려웠지만... 또 아침에 아무도 없이 불꺼진 백화점, 마감시간의 백화점 분위기는 이렇게 일을 하는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것이라서 좋았다.

 

개인적으로 의류매장에서 한 일이 감정 소모도 심하고 이상한 사람도 많았다... 매장에 오는 손님들의 마인드가 다 '나는 비싼 옷을 팔아주러 왔으니 그에 맞춰서 높은 질의 서비스를 받아야 해!' 같았다. 물론 손님을 친절하게 대하는 것에 불만은 없지만, 자꾸 사람을 시험하려고 하는 손님들도 있었다. 내가 이래도 네가 친절할까? 넌 내가 이렇게 말해도 친절할 수밖에 없을걸? 이런 느낌이었다. 특히 나한테 진짜 무례했던 어떤 중년 아저씨... 친절하게 계산 도와드린다고 해도, 질문해야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을 물어봐도 '그럼 내가 갈까?' '그럼 내가 직접 해야 되냐?' '그런 건 왜 물어보냐?'라고 말하면서 엄청 무섭게(아니꼽게) 행동했다. 무슨 내가 계좌 비밀번호 물어본 줄 알았다. 아재.. 내가 아직도 저주하고 있어...

매장 담당하시는 분은 친절했다. 처음 하는 일이라고 해도 모든 일을 다 차근차근 알려주셨고, 밥시간도, 휴식시간도 잘 챙겨주셨다. (직원용 식당에서 먹었는데 메뉴가 제육, 계란말이, 미역국, 된장찌개 같은 한식이라서 너무 행복했다. 집밥은 좀 다른 맛이고, 그렇다고 이런 한식을 매번 식당에서 사 먹지는 않으니까. 프랑스에서 살다 보니 한국에서는 절대 파스타집 안 간다. 당연히 내가 그지같이 해 먹는 파스타랑 전문 레스토랑 파스타집이랑 맛은 다르겠지만, 그래도 난 파스타보다 제육볶음이 더 좋다)

 

백화점 의류 매장 아르바이트 불꺼진 백화점
불꺼진 의류매장은 마네킹들이 가득해서 좀 무섭다. 그런데 나는 공포영화 마니아라서 이런 분위기 너무 사랑한다. 공포영화 속에 들어온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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