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사주 타로라고 단순히 적기는 했는데 내가 사주 타로를 봐줬다는 게 아니다. 그냥 이 일을 한 단어로 어떻게 정의해야 할지 애매해서 내가 일했던 분야를 적은 것이다. 차라리 사주 타로 가게에서 일했다면 사주 타로'가게'에서 일했다고 적었을 텐데, 그것도 아니고 길거리에서 불법으로 노상을 펴놓고 거기서 즉석으로 운을 쳐주는 분 옆에서 '사주 타로 보러 오세요~'라고 소리치거나, 사람이 몰리면 내가 알아서 순서를 정해주고 줄을 세워주는 일이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이게 내 첫번째 단기 알바였을 것이다. 알바ㅇ 알바ㅇ국에서 구한 게 아니라, 단기 알바만 전용으로 구인 구직하는 앱에서 찾은 일이다. 그때 알바가 무슨 일을 하는지 좀 추상적으로 쓰여 있어서 '길거리라고? 옆에서 도와주면 된다고? 무슨 일을 하는거지...' 라고 하면서 알바 장소인 홍대로 향했다. (시급이 2019년에 9000원이었다. 그럼 뭔 일인지는 몰라도 일하러 가는 거다.) 홍대에 만남의 광장인지 거리인지 사람이 엄청 많은 곳이 있는데, 그쪽에 뉴발란스 매장에서 기다렸다. 좀 기다리니 어떤 남성분이 오셨는데 비주얼은 약간 스님 같았다. 인사를 나누고 나서야 내가 어떤 알바에 지원한 건지 좀 정확하게 알 수 있었다.
인사를 주고받고 설명을 들은 뒤, 그분은 작은 간이 테이블과 의자 두 개를 꺼내서 정말로 길 한가운데에 자리를 폈다. 나는 그분이 주신 커다란 피켓을 (사주 얼마 타로 얼마 이런 게 적혀있었다.) 들고 어색하게 서있었다. 처음에는 정말 어떻게 소리 질러야 할지 막막했는데, 머릿속으로 멘트 몇 개를 슈슈슉 정한 다음에 그것만 돌려가면서 소리쳤다. 홍대이다 보니 다양한 패션의 사람들이 많아서 구경하는 재미도 있었다. 사실 그분이 나한테 '사람이 많으면 줄 세우는 것도 해주셔야 돼요'라고 했을 때, 속으로 좀 콧방귀를 뀌었다. 아니 사람들이 줄까지 설 정도로 이런 길거리 타로가 인기가 있다고...?... 그런데 인기 많았다!!! 무시해서 죄송합니다!!! 많은 때는 거의 여섯 팀까지도 대기줄이 서있었다. 대부분 커플분들이셨고, 가끔은 외국분들도 계셨다.
장소가 공공장소인 데다 불법 노점상에게 고용된 알바로써 처음에 적응하기는 좀 어려웠지만 금세 익숙해졌다. 사주 타로 봐주시는 분도 손님이 없으면 맞은편 의자에다가 나를 앉혀놓고 이것저것 물으면서 수다를 떠는 것을 좋아하셔서, 말동무를 하면서 중간중간 휴식도 취할 수 있었다. 기본적으로 그냥 말하는 걸 좋아하시는 것 같았다. 또 옆에서 일하면서 들어보니 입담이 아주 좋으셨다. 사주 타로를 맞추고 틀리고는 별개로, 말을 재미있게 하셔서 손님들이 좋아했다. 게다가 몇 달 전, 며칠 전에 사주 타로를 봤던 손님들이 또 찾아오는 경우도 있었다.
이 일은 원래 당일치기 알바였는데 내가 일하는 게 나쁘지 않으셨던 모양인지 하루 더 부탁하셨다. 그때 주고받았던 메시지가 남아있어서 읽어보니 총 3일 일했고, 마지막 날에는 시급도 9500원으로 올려주셨다! 메시지를 읽어보니 내가 이분을 도사님이라고 불렀었다ㅋㅋㅋㅋ 내가 먼저 절대로 그렇게 불렀을 리는 없고 아마 도사님이라고 불러달라고 먼저 나한테 말하셨겠지...? 하여튼 일이 끝나면 바로바로 그날 일한 시급을 계좌로 주셨다. 또 우리 옆에서 탕후루를 파시던 분이 나한테 일 열심히 하는 게 보기 좋다고 수시로 남은 탕후루를 주셔서, 그때 정말 딸기 탕후루도 원 없이 먹었다. 다만 불법 노점상이다 보니... 일할 시간에 맞춰서 갔더니 노점상 단속이 떴다고 한 시간 뒤에 보자고 하시기도 했다... 이런 건 상인들 사이에서 정보가 도는 건지, 평소에 노점으로 가득했던 길거리가 텅 비어있었다. 그래서 그냥 노점 깔던 자리 근처 벤치에 앉아서 멍 때리면서 사람 구경했다. 그래도 늘 왁자지껄한 홍대이다 보니 지루하지는 않았다.
그 뒤로도 몇 번이나 도사님이(ㅋㅋㅋㅋ) 일을 제안하시기는 했는데 다른 일로 바빠서 몇 번 거절했다. 마지막에는 곧 프랑스로 출국할 예정이라고 알려드렸다. 나름 특이하고 재미있었던 경험이었다.
+불쾌했던 알바 지원 경험담
이건 작년에 있었던 일이다. 몇 번의 단기 알바를 해서 돈을 모은 뒤, 출국 전까지 가족들과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려고 했다. 그런데 꽤 괜찮은 단기 알바 공고가 보여서 (이것도 행사 알바였다.) 지원했다. 보통 이런 알바는 바로 사람을 뽑는데, 이번엔 사전에 면접을 봐서 사람을 뽑겠다고 했다. 뭐 예전에 했던 단기 알바 중에도 면접을 봤던 적은 있어서 그리 대수롭게 여기진 않았다. 또 연락을 해주셨던 분이 말만 면접이지, 앞으로 하게 될 일도 알려줄 겸 겸사겸사 일할 사람 얼굴을 보는 거고, 또 이렇게 해야 행사 직전에 알바를 일방적으로 취소하는 사람들을 예방할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그렇게 부담스럽지는 않았다.
다만 알바 장소가 내 집 기준 너무 멀리 있어서 좀 그렇기는 했지만... 그래도 한국에 떠나기 전에 일을 좀 더 해서 한국 통장에 돈을 넣어두면 그걸로 넷플릭스 구독 비용도 낼 수 있고, 돈 더 벌어서 나쁠 건 없으니 면접을 보러 갔다. 나는 당연히 면접 장소가 본인들 사무실일 줄 알았는데, 스터디룸이었다. 뭐 그럴 수 있지. 내가 제일 일찍 도착했고 그 뒤로 한 언니가 들어왔다. 도착했다고 문자를 보내니 몇 번 방으로 들어오라고 알려주었다.
방문을 열고 들어가니 여성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앉았더니 우리에게 종이를 하나씩 나눠주었는데, 종이에 개인정보와 '왜 이일을 지원했는지?' '왜 자신이 이 일을 해야 하는지?' '자신의 장점' 등을 적는 칸도 있었다... 아니 뭔 취업 면접도 아니고... 단기 알바면 돈 벌려고 온 게 뻔하잖아??? 아무튼 최대한 쥐어짜 내서 적었다. 종이 위에는 시간[ ] 태도 [ ] 뭐시기 [ ] 뭐시기 [ ](뭐시기는 기억 안 나는데 아무튼 몇 항목이 더 있었다.) 이렇게 빈칸이 있었는데 물어보니 그건 자기가 적는 거라면서 비워두면 된다고 했다.
종이를 돌려주니 이제는 직접 자기 어필을 해보라고 했다. 먼저 해야 인상이 좋을 것 같아서 내가 먼저 하겠다고 했다. 이번에도 최대한 쥐어짜 내서 말했다. '저는 단기 알바 위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일을 빨리 파악하고 배우고, 시간도 잘 지킨다. 이전에 참여했던 몇몇 행사에서는 평가가 좋아 또 일을 해달라고 부탁을 받은 적도 있었다. 외국에서 유학을 하고 있기 때문에 외국인 응대에도 익숙하고, 영어와 불어를 할 수 있으며 어쩌고저쩌고...' 진짜 뭔 아이돌 뽑는 것도 아니고 자기 어필은 뭔가 싶었지만 최대한 성의껏 대답했다.
옆에 있던 언니도 나처럼 대답하고, 면접이 끝났다. 종이 위에 시간[ ]칸에 A를 적는 걸 봤다. 아마 시간 약속을 잘 지켜서 A를 줬나 보다. 참내... 그리고 오느라 수고했다면서 약간의 교통비를 준비했다면서 봉투를 하나씩 나눠주었다.
그걸 받아 들고 나왔다. 아무 생각 없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는데, 같이 면접을 봤던 언니가 나한테 말을 걸었다. '혹시... 봉투에 얼마 들었는지 봤어요?'라고. 그래서 '엥 아니요? 왜요???'라고 말했더니 그분이 헛웃음을 지으면서 '얼마 들었는지 한번 보세요ㅎㅎ'라고 하셨다. 사실 면접에서 시간도 꽤 소요했기 때문에 적어도 한 시간 시급 정도, 적으면 8000원 많으면 만원 정도가 들었겠거니 생각하고 확인해보지 않았는데, 저 말을 들으니 갑자기 불길해져서 바로 봉투를 열어보았다. 봉투에 얼마 들어있었게요 여러분? 맞춰보세요ㅎㅎ
무려!!!
삼천 원이 들어있었습니다^^ 교통비는 개뿔, 면접 보러 버스 타고 지하철 타고 못해도 삼천 원보다는 많이 썼을 건데... 돌아가는 비용까지 합치면 못해도 육천 원은 나올 건데... 하여튼 같이 면접 본 언니랑 같이 헛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갑자기 친해져서 같이 카페에 음료수도 먹으러 갔다ㅋㅋㅋ 거지 같은 일 속에서 피어난 동질감이라고 해야 하나. 거기서 같이 실컷 욕하고 수다도 떨었다. 그리고 나중에 서로 면접에 붙었는지, 떨어졌는지 알려주기로 하고 연락처도 교환했는데, 둘 다 사이좋게 떨어졌다!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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