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향수를 써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향수에 딱히 관심도 없었을뿐더러,
친구나 엄마를 따라 향수 구경을 가면
'음, 이건 꽃 향기구나, 좋다! 꽃 향기는 좋을 수밖에'
'와! 이건 훈연향 같은 향이 나네? 내 취향이 아니군'
'오우 쒯 왜 이렇게 강해, 멀미 날 것 같다'
'이건 풀 향이 강하구나!'
같은 생각뿐이고 한 번도 '이거 써보고 싶다!'
한 적은 없다. 꽃 향은 흔해서 그런 걸까?
꽃 향기가 취향이긴 하지만
비싼 가격을 감수하고 굳이? 싶었다.
그런데 엊그제 친구와 파리 여행을 하던 중
세포라에 갔고, 향수를 구경하는 친구를 따라
자연스럽게 진열되어 있던 온갖 향수를 시향해 봤다.
그러던 중 어떤 향수 향을 맡고
완-전히 반해버렸다.
처음으로 이 향을 입고 싶다!
이 향이 내 체취가 된다면 좋겠다!
라는 욕심이 생겼다.
뿌리니까 은은한 시트러스 향기와 생화 같은 향이 났다.
그것은 바로 에르메스 향수 자르당 시리즈 중 하나인
'운 자르뎅 수르닐(Un Jardin Sur Le Nil)'이었다.
처음에는 향수인 줄 알고 착각했는데,
알고 보니 향수는 따로 있고 내가 맘에 든 건
그 향수와 같은 라인의 헤어/바디 오일 미스트였다.
사실 마음에 들자마자 바로 산 건 아니었다.
50ml에 55유로로, 향수 가격에 비해
상당히 저렴한 편이었지만 그래도 주머니 사정이 좀 빠듯했다.
(향수는 세포라 매장 기준 50ml에 약 107유로)
일단 온몸에 잔뜩 뿌리고 나와서
여기저기 돌아다녔는데,
향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결국 구매했다ㅎㅎ
물론 엄밀히 따지면 향수는 아니고 헤어, 바디 오일이지만..
그래서 향은 좀 금방 날아가지만,
처음으로 내 취향의 향을 입기로 결정했으니
그냥 첫 향수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어차피 금방 날아갈 거면 돈 좀 보태서
향수를 사지 그랬냐?라고 묻는다면,
나도 그 생각을 안 한건 아니다.
근데 향수는 처음 뿌렸을 때 이 제품보다 향이 훨씬
시큼했다.. 아마 시트러스 향+알콜 성분 때문에
그렇게 톡 쏘는 향이 나는 것 같은데,
향수 특성을 잘 몰랐고 100유로가 넘는 가격은 너무 부담스러워
일단은 이 제품으로 만족하기로 한 것.
(강한 첫 향은 금방 날아가고 헤어, 바디 오일과 동일하게
은은한 향이 오래 지속된다.)
여름방학에 한국에 가면 열심히 알바를 해서
꼭 향수 본품을 살 것이다.
그전까지는 그냥 세포라 매장이 보일 때마다
들어가서 팍팍팍팍 뿌리고 나오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참고로 이 제품은 아직 한국에 들어오지 않은 듯하다.
유로와 원화 가격 비교를 하려고
에르메스 프랑스 공홈과 한국 공홈을 들어가 봤는데
한국 공홈에는 이 제품이 아예 없었다.
나일강의 연꽃 향이 주제인 향수답게
연꽃이 그려져 있고, 병은 나일강의 물색 같은 푸른색과
연꽃잎을 연상시키는 초록색이 그라데이션으로 이어져있다.
공홈에서 가져온 향수 재료 설명이다.
재료는 기존 향수와 동일하다.
Fragrance verte et boisée,
Un Jardin sur le Nil mêle une mangue verte acidulée,
un lotus délicat et un sycomore élégant.
그린 우디 계열의 향수인 Un Jardin sur le Nil은
톡 쏘는 그린 망고, 섬세한 연꽃, 우아한 플라타너스가
어우러진 향기로운 향수입니다.
개인적으로 장미향, 재스민향 등 꽃 베이스 향수들은
물론 당연히 향이 좋긴 하지만 뭔가 1차원적이라는 생각이 있었다.
내 취향에 비해 좀 파우더리 하거나 세거나 풀향이 있거나.
암튼 '음 좋네~'하고 끝.
그런데 이 향은 좀 더 섬세하고 우아한 향기가 나는 듯하다.
이 향에 너무 빠져버렸다... 하핳
아무래도 향수는 아니다 보니 향이 금방 날아가서
아쉬워하는 날 보고 친구가 무향 핸드크림을 사서
섞어 바르면 향이 오래간다고 조언을 해줬다.
그래서 바로 약국에 가서 무향 핸드크림을 샀다.
좀 전에 샤워하고 손에 발랐는데 너무 좋아서
포스팅하는 와중에도 잠깐잠깐 킁킁대는 중이다ㅋㅋㅋ
시트러스 향 덕분에 시원한 느낌이 있어
여름 향으로 최고지만, 끝 향은 나름대로 포근한 느낌도 있어서
사계절 무리 없이 사용 가능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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