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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유학생의 삶/나만의대나무숲

메츠에서 날 울린 그 사람(1)

by 거품벌레뽀글뽀글 2024. 1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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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기 전에~

이 썰에서 언급 될 (구)친구 Q에 대한 신상은 최대한 드러나지 않게 쓸 예정이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논바이너리A섹슈얼헬리콥터젠더인지, 나이가 나보다 많은지 적은지 동갑인지, 어떻게 알게 됐는지 다 비밀임.

한국인이라는 것 정도만 밝히겠음. 그것까지 안 밝히면 너무 많은 것을 바꾸거나 생략하고 넘어가야하는데 그럼 썰 푸는 의미가 없잖아용.

대신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최대한 자세히 쓸게용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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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2024년 상반기, 나는 룸셰어 아파트에 세들어 살고 있었다. 하지만 룸메이트들이 보기 드물지 않은 병쉰들이었다.

 

 

2024.06.21 - [프랑스 유학생의 삶/주] - ~룸쉐어가 스릴러영화가 되어버린 건에 대하여~

 

(-->얼마나 병쉰이었는지 궁금하시다면 위에 글을 참고해주셔요.)

 

결국 이사를 하기로 마음먹었는데 이사할 집을 찾는건 꽤 어려운 일이었다. 그 와중에 곧 한국으로 귀국 예정이 되어있던 Q가 떠올랐다. Q 집에 두 세번정도 놀러갔었는데 나쁘지 않았던게 기억났다. 내가 메츠에 사는 내내 최소 일 년에 한 번씩 이사하는 동안 Q는 그 집에서 몇 년간 평온하게 지냈었다. Q에게 조심스럽게 '혹시 집 뺄 때 거기 내가 들어가서 살아도 될까? 거기 쓰던 침대같은 가구들은 내가 살게.' 라고 물어봤고, Q도 흔쾌히 집주인의 연락처를 주었다. 나는 집을 쉽게 구하고, Q는 큰 가구나 쓰던 것들을 나에게 주고 가도 되니 나름 윈윈 전략이었다.

 

여기서 잠깐 짧게 프랑스 입주, 퇴거 시스템을 설명해야겠다. 보통 입주하는 날 세입자와 집주인이 같이 집을 쭉 보면서 하자를 체크한다. 만일 집주인이 시간이 없어 이걸 못하더라도 세입자가 반드시 해야한다. 하자가 있다면 사진도 찍어놔야함. 그래야 퇴거할 때 '이거 제가 한거 아닌데용?' 하면서 보증금을 어떻게든 한 푼이라도 덜 주려고 눈에 불을 켜는 집주인 앞에서 당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퇴거 시에는 집주인이 와서 함께 다시 집을 체크하면서 새로운 하자가 있다면 보증금에서 깐다. 프랑스 현지인들조차 이 집주인들의 스크루지 뺨 후려치는 악랄함에 당할 정도다. 나도 예전에 보증금 800 뜯김. 하... 이건 아직도 생각만 하면 개빡침. 800유로 어치만큼 집 못 부수고 나온게 천추의 한임.

 

2023.03.18 - [프랑스 유학생의 삶/주] - 나는 왜 또 6개월 만에 이사를 하게 되었을까 : 외국에 살면서 여기저기 치이고 꼬이고 뻔뻔해진 인간이 음침하게 불평하는 글 ~하지만 그 와중에 쿨한 척 하고 싶으니까 웃긴 짤을 넣어본다~

 

(--> 궁금하면 이 글 참고해주시소.)

 

 

Q는 그런 점에서 정~말 운이 좋았다. 보통 집주인들은 퇴거 날짜를 잡으면 절대로 미리 집체크를 해주지 않는다. 일단 짐을 다 빼야 집 하자가 제대로 보이기도 할거고, 미리 체크했다가 세입자가 퇴거 날 전까지 집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두면 큰일이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나도 집주인 입장을 백프로 이해한다. 그러나 Q네 집주인 할아버지는 짐을 단 하나도 정리 하지 않은 날 것의 방 상태 그대로 보고도 집 계약을 미리 해지해주었다. 보증금도 그 자리에서 쿨하게 돌려줌. (그리고 이건 나에게 끔찍한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

 

그 후에 나와 집 계약을 진행했다. Q는 자기가 쓰던 오븐, 밥솥 등등은 그냥 돈 따로 받지 않고 주겠다고도 했다. 참 고마웠다. Q는 그 집에서 몇 년간 사는 내내 집 안에서 담배도 피고 인센스도 피워서 냄새가 좀 심하긴 했지만 그건 다 내가 알고 있었고, 쉽게 집을 구한 만큼 어느정도 단점은 감내해야한다고 생각했다.

 

<파리에서 날 울린 그녀> 썰에서 말했지만 Q가 떠나고 처음으로 그 집을 들어간건 ㅎ언니와의 프랑스 남부 여행을 마치고 나서였다. 나의 여행 계획과 Q의 귀국 계획이 겹치다보니, Q가 떠나고 나서 일주일 뒤 즈음 내가 입주하게 되었다.

 

ㅎ언니와 여행의 마지막 일주일은 내 집에서 지내면 숙소비도 아끼고, 프랑스 동부도 편하게 여행할 수 있기 때문에 내가 당당하게 ㅎ언니를 초대한거였다. 남부에서부터 기차를 타고 오느라 지친 몸과 무거운 캐리어를 함께 끌고 겨우 도착한 내 새 보금자리. 미리 받아둔 예비열쇠로 문을 열었는데....

 

 

 

얼탱이-어이없음짤-분노짤-황당짤-밈-만화

 

 

 

세상에, 정말, 충격, 그 자체였다. 내가 기대했던 집의 모습은 급히 귀국하느라 약간은 어수선하지만 두고 가기로 한 물건 빼고는 비워진 정도였다. 만약 까먹고 두고 간 물건이 좀 있다 하더라도 어느정도는 예상한 바였다. 내가 정말 충격을 받은 이유는, 집이 Q가 살던 모습 그대로였기 때문이었다. 정말, 10분전까지 Q가 집에 있다가 잠깐 외출하러 나갔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로 그대로였다. 치우려고 노력한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담배냄새+집냄새도 정말 심했다. 진짜 홀아비 냄새 그 자체.

 

ㅎ언니는 비위가 약한 편이라 헛구역질까지 했다. 너무 충격받아서 머리가 멍해져서 일단 집 밖으로 나와서 허기진 배를 채우기로 했다.

급하게 근처 케밥집을 가서 배를 채웠다. 입맛은 전혀 없었지만. 도저히 저 집에서 나는 고사하고 ㅎ언니를 재울 수는 없어서 급하게 남자친구한테 SOS를 쳤다. 다행히 남자친구랑 남친 룸메는 흔쾌히 우리를 받아줬다. 

 

돌이켜보면 이 때 바로 ㅎ언니를 데리고 남친 집에 갔어야 했다. ㅎ언니가 이 집 때문에 고생할 이유가 단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순간에는 너무 멘붕옴 + ㅎ언니가 내 집을 치우고자 하는 의지가 너무 강했기 때문에 우리는 밥을 먹고 바로 옆에 있는 슈퍼에서 몇 가지 청소용품을 사서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ㅎ언니는 내가 이런 일을 당했다는 거에 엄청난 분노에 휩싸여서 온갖 욕을 하면서 집을 치우기 시작했다. 사실 집에 두고 간 물건이 많은거? 그게 그렇게까지 문제 될 일이야? 싶을 수도 있다. 문제는 '정말 모든 것'을 두고 갔다는 것이다. 조금 밖에 안 남은 샴푸랑 기초화장품, 목욕용품, 속옷, 쓰다가 걸어둔 수건, 냉장고 속 먹다 남은 식료품, 담뱃재가 그대로 담겨있는 재떨이 등은 물론이고 심지어 밥솥에는 밥이 그대로 들어있었다. 제일 끔찍한 점은 온 집안에 흩뿌려진 체모였다. 머리카락?ㅋㅋㅋ 노노. 소중이 털을 말하는거다. 물론 왁싱을 하는게 아닌 이상 생활 흔적 때문에 몇가닥 흘린 정도면 이해가 가겠으나, 귀국 세레모니로 소중이 털을 잡아 뜯어서 곳곳에 흩뿌리고, 나 엿먹이려고 일부러 심어둔게 아닌가 싶을정도로 소중이 털이 너무너무너무너무 많았다. 밥솥에도 붙어있었고, 나한테 두고 가겠다고 생색냈던 전기장판에도 붙어있었다. 

 

이쯤되니 Q가 내가 알던 멀쩡한 사람이 맞나????? 심각한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집에 친구만 잠깐 데려와도 열심히 집 청소를 하는게 정상이잖아. 이 모든걸 나한테 보여도 상관없다고 생각한거야? 그 정도로 수치심이라는게 없는거야...????????

 

진짜 소중이털만 아니었어도 두고 간 물건들 중에 쓸만한 생활용품들은 내버려뒀을 텐데, Q가 쓰던 모든 게 역겨워져서 다 쓰레기봉투에 쳐넣기 시작했다. 50리터짜리 쓰레기 봉투 열 봉지를 꽉 채웠는데도 버릴 물건이 끝도 없이 나왔고, 설사 모든 물건을 다 치운다 하더라도 집에서 나는 끔찍한 냄새와 더러운 위생상태 때문에 그 곳에서 머물 수는 없었다. 정말 몇 년동안 단 한 번도 제대로 청소하지 않은 것 같았다.

 

한 편으로는 나름 가까웠다고 생각했던 친구가 날 정말 하나도 존중하지 않았구나, 그리고 그걸 ㅎ언니에게까지 보여줬다는게 너무 부끄럽고, 속상하고, 자꾸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다른 한국인 친구들 중 하나가 자기 집에 이사오기로 했어도 이렇게까지 했을까?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Q는 나였기 때문에 이렇게 아무생각없이 떠나버린거라고 생각했다. (이유없는 피해망상이 아니라 여태 알고 지내면서 여러가지로 느끼는 것들이 있었기 때문에 도달한 결론임.)

그런데 눈물이 나오려고 할 때마다 옆에서 나 때문에 고생하는 ㅎ언니에게 미안해서라도 울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마음을 다스렸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인간의 유형 중에 하나가 자신에게 손해 끼치는 사람에게 한 마디도 못하면서, 자신을 위해주는 사람한테는 그 똥을 치우게 하는 사람인데 내가 그런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나에게 이런 빅 똥을 안겨주고간건 Q인데 애꿎은 ㅎ언니만 헛구역질을 하면서 집을 꾸역꾸역 치우고 있었다...

 

사실 이 일을 겪었기에 ㅊ언니 사건을 나름 단호하게 해결할 수 있었던거고, 내 인생 자체에 친구에게 이렇게까지 뒤통수를 맞은 건 처음이라 어떻게 대응을 해야할지도 몰랐고 패닉에 빠졌다. 하지만 아무말도 없이 지나갈수는 없었다. 나는 Q에게 메세지를 보냈다. 사실 전화를 바로 할 수도 있었지만 <파리에서 날 울린 그녀> 편에서도 언급했듯이 난 '말싸움 못하는 사람'의 표본인지라, 이런 충격상태에서 전화로 직접 말을 잘 할 자신이 없었다.

 

'Q, 나 방금 집에 도착했는데 집 상태가 너무 당황스러워. 집 물려준건 정말 고맙고, 귀국 때문에 정신없었던건 이해하지만 물건이 정말 하나도 안치워져있고, 위생상태도 너무 안 좋고 냄새도 너무 심해.'

라고 메세지를 보냈다.

 

미친듯이 물건을 버리면서 조금 기다리니 답장이 도착했다.

 

'음? 내가 귀국하느라 정신없어서 좀 두고 온건 있는데 그 정도까지는 아닐텐데...ㅠㅠ 많이 더러워?'

 

 

 

어이없음짤-화남-화남짤-분노짤

 

??????????? 지금 이 집구석에서 모든 꼴을 내가 직접 보고 있는데 저런 발 뺌을 하는게??????????

날 대체 얼마나 바보병신으로 보는 건지???????????????

 

 

~투 비 컨티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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