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비어슬리 온 <메츠에서 날 울린 그 사람 1화>~
Q가 떠나고 난 뒤 너무나 끔찍한 집 상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Q에게 메시지를 보냈지만 발뺌한다.
Q : 너무 급하게 치웠나 보다ㅠㅠ 내가 진짜 해줄 수 있는 게 없을까... 진짜 미안해... 다시 치우러 갈 수만 있다면 그럴 텐데..ㅠㅠㅠ
(내 백업 폴더 중에 '2024 사진 백업 > 끔찍한 인간들 > 끔찍이 1 폴더'에 모든 메시지 캡처가 남아있어서 참고하면서 적는 중이다. 참고로 끔찍이 2는 ㅊ언니다.)
치우긴 한 거냐고.......... 저 메시지를 보니 진짜 나한테 하나도 안 미안하구나. 어차피 나한테 미안함을 느낄 정도인 사람이었음 애초에 이런 일을 안 벌였겠구나 싶었다. ㅎ언니는 저렇게 말하는 것도 어차피 내가 아무것도 못 말할 줄 알고 저러는 거라며 입에 불을 뿜었다.
'저렇게 말해도 진짜 지가 비행기표 다시 사서 와서 치워줄 거야? 아니잖아 뽀글아. 미안하다고 지금 이 상황이 해결이 돼? 너가 쟤한테 요구할 수 있는 건 돈밖에 없어.' 듣고 보니 맞는 말이긴 했다.
일단 집 곳곳 사진을 찍어서 보냈다. 소중이 털은 잘 보이라고 플래시까지 터뜨려서 보내줌...^^
아 메시지 캡처 보고 기억난 건데 차단기는커녕 헤어드라이기 플러그까지 멀티탭에 그대로 꼽혀있었다. 진짜 최소한의 상식이 있나요?
아 또 두고 간 가방들은 나 쓰라고 두고 갔다고 하기엔 안에 쓰레기들이 들어있었다.
Q는 나한테 미안하다며 청소비라도 보내주겠다고 말했다. 이런 일이 처음이고 어쨌든 몇 년간 좋은 관계로 지냈던 친구라 욕은커녕 돈 달라는 말조차 쉽게 나오지 않았다. ㅎ언니가 없었다면 그냥 청소용품 산거 영수증만 보여주고 오만 원 정도 받고 끝났을 것 같다. ㅎ언니가 이런 쓰레기집은 사람 불러서 청소하면 최소 오십은 나온다고, 오십만 원 내놓으라고 하는 걸 내가 맘이 약해서 이십만 원만 달라고 했다. (지금 같으면 카톡대출받아서라도 오십 보내라고 할 듯. 이 일이랑 ㅊ언니 일 덕분에 한층 알바노 인간으로 성장함.)
Q는 수중에 당장 십만원 밖에 없다고 내 한국 계좌에 십만 원을 보냈다. (솔직히 지금 생각해 보면 안 믿김.) 그리고 나머지는 돈이 생기면 바로 보내주겠다고 했는데, 처음에는 수긍했지만 점점 이 집을 청소하면서 분노가 차올랐고 도저히 그 돈 받겠다고 Q와 연락을 이어가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결국 돈 받는 입장에서 수그리고 들어가듯이 돈 달라고 해야 하는데 그것도 싫었고 저런 식으로 계속 미룬다면 더 스트레스받을 것 같았다. 나는 Q에게 이런 내 맘을 말하고 빌려서라도 오만 원이라도 보내라. 그리고 연락 끊자. 고 메시지를 보냈다. Q는 돈을 구해서 나한테 오만 원을 마저 보냈다.
저 당시 내 메시지들의 일부. 글을 쓰면서 다시 곱씹어도 빡침.
돈을 받고 나서 우리는 너무 지치기도 했고 ㅎ언니가 이 똥을 더 치우게 두기에도 너무 미안해서 남자친구네 집으로 데려갔다. 여기서도 ㅎ언니는 티는 안 냈지만 많이 괴로웠을 것이다. 남자 둘이 사는 집이 그렇게 깨끗하지도 않다 보니. 그래서 <파리에서 날 울린 그녀> 편에서 말한 것처럼 ㅎ언니가 메츠에 오래 머물지 않고 파리로 돌아갔던 것이다.
아무튼 저 집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나도 2주쯤 뒤에 한국에 여름방학을 보내러 돌아가야 했기 때문에 치울 시간이 얼마 없어 정말 막막했다. Q와의 인연은 저기서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고민이 생겼다. Q와 나 사이에 친하게 지냈던 한국친구들이 몇 명 있다. 나중에 어색한 일이 생기지 않게 Q와 내 인연이 끝났으니 앞으로 다 같이 모이기는 힘들 것 같다, 정도 말은 해야겠는데, 솔직히 다른 한국 친구들이 저 일을 얼마나 심각하게 받아들여줄지도 모르겠고, 남일을 가볍게 생각하는 건 충분히 이해는 가지만 조금 실망하는 건 어쩔 수 없겠다는 생각도 들고... 내 편들어달라는 유치한 푸념같이 보이면 어떡하나.. 싶고. 하여간 맘이 복잡했다. 그 와중 떠난 ㅎ언니를 만나러 파리에 가기 전에 한국 친구 중 한 명을 잠깐 만날 일이 생겼다. (저 말하려고 일부러 약속 잡은 거 아님)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밤새 고민하다가 친구를 만났다.
반갑게 만나서 근황을 나누며 속으로 좀 눈치를 보고 있는데 친구가 입을 열었다. '뽀글아 너 Q랑 싸웠다며. 너가 화냈다고 하길래 도대체 뭘 어떻게 하면 너가 화를 내지? 하고 궁금하기도 하고 놀랐어. 무슨 일 있었던 거야?'라고 뜻밖에 먼저 이 일을 꺼내는 게 아닌가.
싸워...? 싸웠다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어이가 없으면서도 한 편으로는 Q는 내게 정말로 조금도 미안하지 않나 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내가 다른 친구한테 먼저 이 일을 말해서 자기 평판이 떨어질까 봐 겁나서 슬쩍 'ㅠㅠ뽀글이가 내가 잘못해서 너무 화났다ㅠㅠㅠ'하고 먼저 불쌍한 척 선수 친 거 아니냐고요. 정말로 미안했으면 내가 무슨 말을 하던 가만히 있었어야 하는 게 아닌가? 난 Q에 대한 마지막 존중 때문에 겹친구들에게 어떻게 이 일을 조심스럽게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또 고민했는데. 너무 화가 나서 그냥 친구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솔직히 다 말했다. 그리고 혹여나 나 때문에 Q를 만나는 걸 불편해할까 봐
'이건 어차피 나와 Q사이에 일어난 일이고 Q와 계속 친구로서 인연을 이어나가더라도 난 전혀 나쁘게 생각하지 않을 거다. 그냥 우리 다 같이 아는 사이인데 관계에 변화가 생긴 정도는 알아주었으면 좋겠어서 말하는 거다.'라고 덧붙였다. 고맙게도 친구는 내 상황과 기분을 이해해 주었다. 그렇게 짧은 만남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며칠 뒤쯤이었나? 영영 다시는 연락할 일이 없을 것 같았던 Q에게서 문자가 왔다.
대충 내용은
'나랑 연락하기 싫은 거 안다. 나도 내가 한 행동이 부끄럽고 죄책감 느끼고 괴롭다. 진심으로 뉘우치고 있다는 말 전하고 싶어서 연락했다.'를 구구절절 길게 늘인 문자였다. 아니 생각해 보면 ㅊ언니도 그렇고 참 말들은 장황하게 잘해요. 그쵸? 몇 번이나 말하지만 그 정도로 미안함을 느끼고 상식적인 인간이었음 애초에 저런 짓을 안 했겠죠? 게다가 겹친구한테 선수까지 쳐놓고 저렇게 문자를 보낸다고? 진짜 내가 개호구병신인줄 아나? 말하기 시작하면 내가 할 말이 더 많은데 진짜 무슨 자신감이지...????
장문이 될 것 같아서 메모장에 저렇게 먼저 쓰고 고대로 복붙 해서 보냈다. 저 정도 말했음 알아듣겠지 생각했는데 경기도 오산이었다.
훨씬 더 긴 장문으로 답장이 왔다. 내용은 더 좀스러워져 있었다. '이건 이래서 안 버린 거고 저건 날 생각해서 쓸 것 같아서 두고 간 거고 집을 치우기 위해 내가 요것도 했고 조것도 했고... 플러그 안 뽑고 전원 차단 안 내린 것도 다 이유가 있었고..더보기'...
지금 캡쳐본을 찬찬히 다시 읽으며 생각해 보니 Q는 자신이 도저히 이런 드럽고 비상식적인 짓을 한 사람이라는 걸 못 받아들였던 것 같다.
(뭐 진짜로 평소에 이런 무책임한 사람이 아니었는데 영구 귀국이라는 크나큰 이벤트 때문에 정신머리가 나가서 딱 한 번 이런 일이 생긴 거라면 억울할 수도 있지만 그 딱 한 번의 피해자가 내가 됐는데 그걸 이해해 줘야 됨?? 아니 나도 남들과 비교해서 깔끔한 성격이라고는 말 못 하겠지만 최소한 남한테 내 집을 보여줄 일이 생기면 엄청 열심히 치운다고.... 심지어 집 빼는 건데 생각하기 귀찮고 시간 없어서 급했으면 다 쓰봉에 담아서 버리기라도 했어야지. 그건 뇌 빼고도 할 수 있잖아. 아무리 다시 생각해도 어떻게 자기 속옷까지 두고 갈 생각을 하는지.. 미안하지만 진짜 정신적으로 어딘가 아픈 사람이었는데 내가 등신이라 눈치를 못 챈 건가 심각하게 고민했었음.)
아무튼 나한테 변명이라도 더 해서 '그 부분은 Q가 맞아'라던가, 'Q가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이해했어'라고 조금이라도 두둔하는 말을 듣고 합리화하고 싶었던 듯.
(에따데리우는 집검사를 말하는 거임)
진짜 그 집구석을 직접 눈으로 보고 다 치워야 하는 사람한테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은지 황당했다. 비행기표 사서 다시 와서 집 싹 다 치워주면 인정. 근데 그럴 일 없잖아? 나한테 이십만 원도 아까워서 못 주는 양반이.
저 연락을 끝으로 답장은 다시 오지 않았다. 하지만 놀랍게도 몇 달 뒤 내가 먼저 연락을 하게 되는데...?!
과연 무슨 일로 먼저 연락을 했을까??
~투 비 컨티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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