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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유학생의 삶/나만의대나무숲

메츠에서 날 울린 그 사람(3)

by 거품벌레뽀글뽀글 2024. 1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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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비어슬리 온 <메츠에서 날 울린 그 사람 2화>~

 

어찌어찌 청소비 꼴랑 15만 원을 받아내고 (깜빡하고 못 썼는데 Q가 두고 간 침대, 옷장 사는 값으로 거진 30만 원 줌) 연락을 끊어낸 나. 

 

 

 

개빡침-고통-몸부림-슬픔-절망-분노

 

 

파리에서 ㅊ언니와의 전쟁을 치루고 돌아올 때까지 잠깐 청소를 잊고 현실도피 했었지만, 한국으로 출국 전까지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나는 남자친구 집에서 매일매일 그 집으로 출퇴근을 하며 하루종일 청소했다. 쓰레기와 털은 끝도 없이 나왔고, 벽이랑 바닥, 천장은 식초랑 커피물로 닦아도 닦아도 다음날이면 다시 냄새가 올라왔다. 며칠 미친 듯이 청소를 하니까 허리에도 무리가 왔다. 원래도 허리가 그닥 좋은 편은 아니었는데 이 일로 완전히 병이 되어버린 듯했다.

 

한 번은 집을 치우다가 허리 통증이 너무 심하게 와서 도저히 서 있을 수도 걸을 수도 없었다. 어쩔 수 없이 Q가 두고 간, 소중이 털이 틈틈이 가득 끼어있고 홀아비 냄새가 듬뿍 벤 소파에 드러누워 꼼짝도 못 하고 있었는데 그때 분노로 눈물이 흘렀다. 역겹고 더럽고 추잡스럽고 토할 것 같고 존나 디스거스팅 했다. 심지어 그렇게 열심히 치웠는데도 화장실 하고 부엌은 손도 못 댔다.

허리통증이 많이 심해져서 한 번 아프기 시작하면 어디 누워서 움직일 수가 없는 수준까지 와서 이러다 거동도 못하는 거 아닌가, 남의 소중이 털 치우다가 병상에 드러눕는 건가 싶어서 개빡치고 무섭고 슬펐다. 그래서 귀국을 며칠 남기고 청소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아마존에서 허리 복대를 사서 그걸 차고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돌아갔다.

 

한국에 가서는 청소용품이랑 탈취제를 사기 위해 단기 알바를 뛰어서 200만 원을 벌었다. (200까지 벌 일은 아니었는데 그냥 내가 돈 벌고 새로운 경험하는 걸 좋아해서 열심히 했다.) 정형외과에 갔더니 디스크라고 했고 어디 기대거나 앉거나 오래 걷거나 운동하지 말고 서있거나 누워있기만 하라고 했다. 허리 주사를 두 번 맞았는데 정말 끔찍했다.

 

 

 

디스크-허리주사-디스크주사-정형외과-허리치료
끔찍했던 허리 주사의 흔적. 화장실 불이 어두워서 저래 나옴. 허리에 때 낀거 아님.

 

 

부모님은 나에게 대충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셨고 나랑 같이 실컷 Q를 욕해주었다. 아무튼 한국에서 잘 지내다가도 아직도 냄새와 털과 쓰레기가 남아있는 그 집만 생각하면 숨이 턱 막혔다. 아무리 생각해도 개학 전에 도저히 그 집을 사람이 살만할 정도로 치울 자신이 없었다. 집이 큰 집도 아니고 그냥 작은 방 하나에 작은 화장실, 부엌 딸려있는 월세방인데도 뭐가 그렇게 더럽고 치울게 많은지... 어휴...

 

프랑스에서 알게 된 다른 친구에게 대충 저런 고민에 대해서 말하니 그냥 청소 서비스 한 번 플렉스 하고 Q에게 청구하라고 했다. 친구가 알려준 청소 대행업체에서 견적을 내보니 3시간 치워주는 값이 대충 100유로 정도 나왔다. 3시간만 누가 화장실이랑 부엌을 대충 청소해 주면 나머지는 내가 어떻게든 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청소의 고통에 미쳐서 제정신이 아니게 된 나는 두 달 만에 Q에게 견적서와 함께 돈 내놓으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Q는 청소비 주는 것 자체는 동의했지만, 수중에 돈이 없어서 다음 달에 줄 수 있다고 했다. 아니, 나보다 세 달은 한국에 먼저 들어갔는데 그 정도 돈도 없다고..? 전 두 달 동안 단기 알바 세 탕 뛰어서 200벌었는데용....? (알바썰도 나름 재미있어서 나중에 간단하게 풀듯)

저번에도 그랬지만 돈 좀 받자고 연락 질질 끌 생각도 없고 돈이 없어서 대출을 받든 빌리든 내 알 바가 아니기 때문에 카톡 비상 대출이라도 받아서 당장 보내라고 했다. 

 

Q는 믿거나 말거나 카톡 비상 대출도 이미 받아서 못 한다고, 못 믿는 건 알겠지만 알바 뛰는 거 인증도 할 수 있다면서 꼭 다음 달에 주겠다고 했다. 못 믿겠으면 자기 부모 연락처라도 주겠다고 했다. 아마 내가 좀 눈치가 있었으면 '아 설마 부모 연락처까지 받겠어? 내가 그 정도로 진심이라는 것만 알아달라는 거지~'라는 속마음을 눈치챘겠지만 (이 것도 친구가 알려줘서 '오... 그런 뜻이었구나....' 하고 깨달음) 이미 난 ㅊ언니 일을 겪으면서 남에 부모 공격을 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ㅎㅎ 남에 부모 공경 어쩌고.. 에이 그래도 부모님까지는 좀... 됐어 알겠으니까 나중에 줘.... 할 생각은 티끌만큼도 없었기 때문이다. 

 

난 그 말을 먼저 해준 게 오히려 너무 반가워서 'ㅇㅇ근데 그냥 연락처만 주면 그게 진짜 부모님 번호인지 난 모르니까 부모님 성함 써 있는 전화번호부 앱 연락처 캡처해서 보내줘~'라고 답장했다. 아마 Q는 대충 부모 카드 꺼내면 넘어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겠지만 내가 저렇게 나와서 당황했을 거다. 뇌피셜이 아니라, 내가 저렇게 말하니까 몇 분 지나서 바로 돈을 송금했다는 답장이 왔다. 누구한테 빌렸다면서. 거봐 거봐 나올 구석이 있는데 구차하게 남한테 빌리면서까지 바로 책임지기는 싫었다 이거지^^ 암튼 돈을 받자마자 바로 청소 서비스를 예약했다.

 

어느 정도 금융치료를 받아서 가벼워진 마음으로 프랑스에 귀국했고, 귀국한 바로 다음날 아침에 청소해주실 분이 집에 오셨다. 내 또래 여자분이었는데 어쩜 청소를 그렇게 야무지게 잘하시는지... 미안하지만 프인들이 보통 대충대충 일하는 걸 한두 번 본 게 아니라 방 청소 하는 척하면서 옆에서 지켜봤는데 프로페셔널 그 자체였다. 그분도 부엌이랑 화장실 상태를 보면서 이렇게 더러운 건 처음 본다고 했다. 난 오해받고 싶지 않아서 전 세입자가 이렇게 해놓고 갔다, 이것도 내가 2주 내내 청소해서 그나마 깨끗해진 거고 쓰봉 이십 봉지는 나왔다, 고 했더니 엄청 놀라심..ㅋㅋ..... 세 시간이 충분할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청소부님이 내 요구를 (화장실, 부엌을 치워주세요) 들어주기 위해 최선을 다해서 청소해 주셨고, 덕분에 그럭저럭 내가 마무리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개학하기 전에 완전히 입주하는 게 목표였는데 귀국 후 3일 뒤가 개학이다 보니 그건 좀 무리였다. 일주일 학교 다니면서 더 치우고 남친 집에 쌓아둔 내 물건을 들여오니 그제야 사람이 살만한 집이 되었다. 소중이 털이 가득 들어있는 소파는 동사무소에 수거 신청을 해서 10월 말에 처리할 수 있었다. 얼마나 속이 시원하던지.

 

아 맞다 Q랑은 친구였기에 인스타 맞팔이었는데, 저 일 이후로 딱히 차단을 하지는 않았다. 카톡도 냅둠. 걍 별 생각이 없었음. 그리고 본인 사진을 주기적으로 엄청 힙한 척 찍어서 올리는 거 볼 때마다 '저기다가도 소중이 털 흘리고 다니려나...' 하는 생각 정도가 들었다. 그렇게 한동안 잊고 있었는데 최근 문득 생각나서 찾아보니 날 차단한 건지 비계로 돌린건지 잘 모르겠지만 더 이상 Q의 계정을 볼 수 가 없었다. 카톡도 뭐 멀티프로필을 한건지 차단한건지 모르겠지만 기본 프사로 바뀌어있었고. 하긴 Q 입장에선 본인이 잘못한 사람 입장이니까 그럴 만도.

 

 

 

 

-에필로그1-

 

위에 적었듯 Q가 두고 간 물건 중 침대랑 히터기, 매트리스 청소기 정도만 남기고 싹 다 버렸다. (히터기는 한 번 틀었다가 오줌 찌든 내가 미친 듯이 나길래 충격받아서 분해해서 다 닦음) 다만 Q가 두고 간 물건들 중 내 전공과 관련된 용품들, 특히 거의 새것이나 다름없는 것들은 좀 남겨뒀다. 한 번은 그중에 오일파스텔을 쓰려고 상자를 열었는데, 써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상자 1을 열면 상자 2가 나오고 덮여있는 덮개 같은 걸 열어야 내용물이 나오는 형식이다. 그렇게 열어서 손을 대려는 순간 난 또 놀라버렸다... 오일 파스텔 안에 붙어있던 소중이 털 두 가닥... 아니 진짜 어떻게?????????? 이 정도면 일부러 자기 소중이 털을 곳곳에 심어두면서 즐거워하는 사람인 거 맞는 거 아니냐고...???????? 결국 그 오일 파스텔 버렸다.

 

 

 

 

-에필로그2-

 

<파리에서 날 울린 그녀> 편에서 이미 반성할 점 등은 적었고. 마지막으로 이 두 가지 일을 다 겪은 소감을 말해보고 끝내야겠다. 물론 저 일 말고도 꽤 많은 프랑스산 병쉰들을 만났었지만 그래도 해외에서 만난 한국인에 대한 나쁜 편견은 없었고 좋은 사람 있음 나쁜 사람도 있는 거지~라고 긍정적으로 살았는데... 이번 일을 계기로 완전히 인간불신이 생겼다. 저 일들 이후로 한동안은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게 거부감이 느껴질 지경이었다. 그래서 느낀 점은, 서른 넘어가서도 머리가 꽃밭인 인간은 금수저 아니면 찐 기존쎄가 아닐까...

삶을 살면서 어쩔 수 없이 등신들도 만나고 상처받는 일이 있었을 텐데 계속 타인을 믿으면서 긍정적인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거잖아??? 이건 진짜 대단한 거다.

 

그리고 내가 오만하게 사람을 급 매기고 거르는 것, 편견을 가지는 것과 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최소한의 위험 감지 레이더를 세워두는 건 다르다고 생각한다. 읽어주신 분들은 절대로 이런 일이 없고 좋은 사람들만 만나기를 바라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조만간 알바썰로 돌아올게용.

 

 

2024.12.08 - [프랑스 유학생의 삶] - 메츠에서 날 울린 그 사람(2)

 

 

2024.11.22 - [프랑스 유학생의 삶] - 파리에서 날 울린 그녀(1)

 

 

2024.08.15 - [한국의 삶/놀자] - 동물의 숲 X 코엑스 아쿠아리움 콜라보 방문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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