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비어슬리 온 ~파리에서 날 울린 그녀 3화~
분노 때문에 오히려 초연해진 마음으로 ㅊ언니 집 앞까지 찾아가 반나절을 기다렸지만, 결국 허탕치고 돌아온 나. 슬슬 오기가 생겨서 멀티프로필에 뒷담 캡쳐본을 프사로 설정한 다음 ㅊ언니만 볼 수 있게 설정해 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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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잔한 분노는 한 켠으로 밀어두고. 위즐리댁에서 애들이랑 같이 마리오카트도 하고, 수다도 떨다 보니 어느새 저녁 먹을 시간이 되었다. 아주머니가 만들어주신 파스타를 막 한 입 먹으려는 순간, 전화가 왔다. (평소에는 방해금지모드로 해두는데 ㅊ언니 연락은 바로 받으려고 알람까지 켜둠) ㅊ언니였다! 안 그래도 배고파서 밥 좀 먹으려는데 타이밍도 참 예술이지. 그래도 전화받는 게 제일 중요하니까 포크를 내려두고 바로 밖으로 나가서 전화를 받았다.
모든 대화가 일일이 기억나는 건 아니지만 대화는 대충 이런 식으로 흘러갔다.
ㅊ언니 : 뽀글아 내가 좀... 아팠고 연락하기도 민망해서 이제 연락했어. 진짜 미안해. 내가 정말 할 말이 없어.
나 : 언니. 언니 나한테 별로 안 미안한 거 알아. 진짜 미안할 거였으면 애초에 그런 짓을 안 했겠지. 그리고 나한테 바로 사과도 했겠지.
ㅊ언니 : 너가 그렇게 말해도 난 정말 할 말이 없어... 그런데 프로필 사진 그건 왜 그렇게 해둔 거야.. 이건 우리 둘 사이의 일이고 남들이 알
필요 없는 거잖아...
전 화에서 적는 걸 깜빡했는데, ㅊ언니한테 메시지, 카톡, 메일을 보내면서 거기다가 '만약 오늘 저녁까지 연락하지 않으면 겹지인 단톡방 만들어서 언니가 얼마나 주변 사람들 쌍스럽게 욕하고 다니는지 다 까발리겠다. 프잘사(프랑스에 사는 사람들이 모이는 네이버 카페임)에도 언니 초성, 뒷담 캡쳐본, 어디로 대학 가는지 위치까지 다 알려줄 테니까 감당할 수 있으면 잠적 한 번 해봐라.'라고 보내긴 했었다. 물론 제3자들 입장에선 어쩔티비... 중고딩 십 대들이 할 법한 짓을 왜 20대 후반인 애들이 하고 있냐;; 하고 나까지 욕먹을지도 모르지만 어차피 난 ㅊ언니를 조지는 게 제일 중요했기 때문에.
나 : 거봐라. 언니는 그냥 남들한테 알려질까 봐 겁나서 나한테 연락한 거 아니야? 그거 멀티프로필이고 언니한테만 그렇게 보이게끔 설정해 둔 거야. 하도 연락이 안 되니까 답답해서! 그리고 난 언니를 몇 년이나 좋은 친구로 생각하고 믿었는데, 그런 사람한테 이년 저년 욕 듣는 거 수치스러워서라도 남들한테 이런 거 못 보여줘.
ㅊ언니 :... 그런 설정을 할 수 있는지는 몰랐네... 어쨌든 정말 미안해.
나 : 됐어. 사과 듣고 끝낼 거였으면 이렇게 연락하지도 않았어. 묻고 싶은 것, 할 말 정말 많은데, 난 그간 언니랑 정도 있고 도저히 이따구로 전화하면서 못 끝내겠어. 그래서 난 오늘 아침에 언니네 집도 갔었는데. 꽤 오래 기다렸는데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안 나오더라?
ㅊ언니 : 아... 내가 몸이 안 좋아서 계속 집 안에만 있었어... 온 줄 몰랐어...
나 : 아 당연히 온 줄 몰랐겠지. 전화로 에너지 낭비하고 싶지 않다. 됐고 내일 아침에 언니네 집 근처 카페에 갈 테니까 나와라. 난 아무래도 면대면으로 대화를 해야 직성이 풀리겠어.
ㅊ언니 : 알겠어. 충분히 이해해.
이렇게 전화통화를 마무리했다. 솔직히 니 욕한 사람 뭐가 좋다고 그렇게 꾸역꾸역 만나야겠냐? 할 수도 있다. 남자친구도 기껏 즐겁게 주말 보내러 같이 왔더니 하루종일 뒷담녀 잡아 족치겠다고 바깥으로 떠돌아다니는 나를 좀 이해하기 어려워했다. 사실 나도 모르는 사람, 별로 안 친했던 사람이 저랬으면 '븅신 뭐래~' 이러고 넘어가거나 전화해서 경고하는 수준으로 마무리할 것 같다. 모르겠다. 그냥 내가 ㅊ언니와 그간 쌓아온 관계를 고작 전화통화 따위로 종결짓는 건 불가능하다고 느꼈다. 만나서 한 대 치면 좋겠다 싶기도 했지만 프랑스인들한테 아침부터 동양녀 둘이 머리채 잡고 싸우는, 보기 드문 구경거리가 되고 싶지 않았다.
고작 사과 직접 받자는 이유로 직접 보고 싶은 게 아니었다. 사과받았다는 걸로 만족하고 마무리할 거였음 전화로 끝냈을 것이다. 애초에 1화에서 언급했던 모종의 끔찍스러운 인간관계 사건을 겪고 깨달은 건, 날 정말 존중하는 좋은 사람은 처음부터 미안할 짓을 안 한다는 것이었다. 지 맘대로 날 만만하게 생각하면서 끝내 선 넘어놓고 고작 사과 따위로 무마하려는 게 말이 되나? (심지어 저 일과 이 일 둘 다 불과 2주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하하)
사과는 어차피 공짜인데요?
직접 만나려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내 목적은 세 가지였다.
첫째, 내가 정말로 잘못한 게 있는지 듣고 그런 일이 있었다면 직접 사과하기. 가해자는 원래 가해한 기억이 없다고 하니까. 사소한 것이라도 만약 내가 한 실수가 있다면 제대로 사과하고 싶었다.
둘째, 휴대폰 내놓으라고 해서 카톡 검색어에 기니년, 허언증, 내 이름과 ㅎ언니 이름, 겹지인 이름 등등 뒷담 키워드를 다 검색해서 흔적이 있다면 모두 캡처해서 내 휴대폰으로 보내기.(그리고 그 뒷담을 누구한테 한 건지도 알아내기. 도저히 저런 천박한 말을 자기 엄마한테 했다는 게 믿기질 않았다. 나도 엄마랑 친구같은 사이라 이것저것 구구절절 다 말하긴 하지만 저렇게까지는... 절대 말 안한다.)
셋째, ㅊ언니 부모님 연락처 알아내기.
다음날 아침, 어제 아침처럼 일찍 위즐리댁 대문을 열고 나와 지하철을 타고 그녀의 집으로 향했다. 카페는 내가 전날에 급똥 때문에 들렸던 그곳으로 정했다. 핫초코를 주문하고, 머릿속으로 할 말을 고르면서 ㅊ언니를 기다렸다.
따뜻한 음료를 마시면서 마음을 진정시키고 있자니, ㅊ언니가 카페로 들어오는 게 눈에 보였다.
~투 비 컨티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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